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눌수록 배가 된다. 이 명제를 증명할 수 있을까? 이 문장을 진리처럼 믿으며 살아온 사람에게, 이 영화는 의문 섞인 물음을 던지며 시작한다.고통이 온전히 나만의 몫으로 남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버겁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장례식 속에서는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기대며 고통을 잠시 덜어내곤 한다. 그러나 조문객들은 결국 떠나는 존재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면, 잠시 가려졌던 고통은 다시 온전히 나에게 돌아온다. 홀로 맞는 집의 적막함과 공허함. 그 고통스러운 순간은 누구도 대신 겪어줄 수 없고, 오직 내가
좋은데 피곤한 우리네 멜로언제부턴가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일 자체가 피곤하다는 걸 누구나 쉽게 인정하게 됐다. 마음엔 여유가 없고, 미래는 불투명하며, 인간관계는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교류에는 품이 든다. 진심을 요하는 공감과 소통은 더더욱 그렇다.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을수록 관계는 사치가 된다. ‘내가 지금 누굴 만날 땐가?’ 하는 자기 검열이 일상이 된다.사람 만나는 일이 어디 쉽나. 연애고 썸이고 다 좋은 거 알겠는데 어쩌겠는가, 지금 당장 피곤한데. 애쓸 일이 너무나 많다. 어쩌면 영화·드라마보다 절절한 것이 현실이겠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현재 영화계에서 가장 뜨겁고 주목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독창성과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 될 수 있는 영화를 들고 나타났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독창성이 강한 그에게 대중성을 허락할 작품이 될 것이다. 자신이 영화적으로 지향하는 지점을 명확하게 하면서, 관객이 원하는 지점까지 함께 짚어낸다. 우선. 그가 가진 특유의 연출, 감각은 여전히 유지된다. 거기에 다양한 장르가 혼합되었는데, 이는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다. 액션, 드라마, 블랙 코미디 등의 장르적인
기록될 만한 전폭적인 자본을 힘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는 ‘작가’ 폴 토머스 앤더슨의 색채를 잃지 않았다. 끈질긴 캐릭터 연구, 고유한 편집 리듬, 리드미컬한 음악 등 앤더슨 영화에 기대하는 요소들이 온전히 담겼다. 더 고무적인 건 앤더슨의 ‘새로운’ 영화라는 확장적 감상까지 (이번에도) 놓치지 않았다는 점인데, 장르를 융합하는 솜씨가 무엇보다 혁혁한 공을 세웠다. 집요한 추적과 그에 따른 전략 공방에서 우러나오는 서부극적 서스펜스, 혹은 부조리한 상황을 비트는 스크루볼 코미디의 엉뚱한 유머. 영화 독해 수준을
영화의 첫 장면이 스크린에 비치는 순간, 우리는 이 영화의 감독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평면적이고, 단순한 앵글 속 흔하지 않은 색감은 관객들의 눈과 뇌를 동시에 사로잡는다. 자신만의 미학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투영하는 감독, ‘웨스 앤더슨’. 그의 대표작으로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있다.웨스 앤더슨의 미감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단편영화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의외일 것이다.그가 영화를 처음 시작한 때는 1994년 단편 ⌜바틀 로켓⌟ 으로 시작했고 2014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후에도 꾸준히
셀린 송이 새로운 영화로 돌아왔다. 전작 〈패스트 라이브즈〉와 마찬가지로 그녀가 커리어를 시작한 뉴욕을 배경으로 골랐고, 감독 본인이 영화를 공부하던 시절 결혼정보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커플매니저인 ‘루시’를 중심으로 한 삼각관계 서사를 만들어냈다.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를, 그리고 물리적 거리를 넘나들던 전작과 달리 〈머티리얼리스트〉는 이국적인 향기가 깊게 배어있는 영화다. 그러나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이 이국적인 영화를 전 세계 관객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해주는 것은 ‘물질만능주의인 현대사회에서 연애하기’라는 아이러
연기와 사기의 차이가 무엇이냐. 둘 다 상대를 속이는 행위이다. 사실이 아닌 거짓을 행동하여, 상대방을 속이는 행위를 하는 이를 배우라 한다. 배우(俳優)에서 배(俳)를 살펴보면, ‘사람 인(人)’에 ‘아닐 비(非)’가 함께 있다. 이는 본래의 모습이 아닌, 타인의 모습으로 변함을 뜻한다. 사기꾼과 유사하지 않은가. 이처럼 연기와 배우. 사기와 사기꾼. 둘의 차이는 크다고 보면 크고, 작다고 보면 작다.우리는 에서 디바인 G와 디바인 아이라는 캐릭터를 바라본다. 디바인 G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리어왕」, 「한여름밤의 꿈」과
영화 '그래비티'의 첫인상은 아름답고 압도적이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만큼 사전에 영상미의 중점을 두고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영상미로도 충분한 듯한 영화였다. 하지만, 영화 '그래비티'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영상과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가진 인간에 대한 시선이 담겨있기에 더욱 훌륭한 작품이 된다. 우선, 영화 '그래비티'는 우주라는 공간으로 관객들을 끌어당긴다. 극강의 영상미를 통해 전해지는 현실감은 놀라웠다. 우주를 그리는 훌륭한 영상의 영향일까? 그 영상으로 전해지는 현실감을 통해 관객들은 우주에
인간이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 ‘나’라는 존재가 우주에서 보나 지구에서 보나 작은 점에 불과한 작은 존재라는 사실. 혹자의 삶은 그것들을 받아들이면서부터 더욱 의연해진다. 조금 당당하지 못해도 세상을 마음 편히 유영할 수 있고, 내세울 것 없어도 어깨를 활짝 펴고 걸어갈 수 있다. 물론 이런 세상의 법칙들을 너무 일찍이 깨닫는 것도 재미없을 터. 젊음의 에너지는 그야말로 당당하고 싶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세상에 내세우고 싶은, 서툴지만 그 자체로 뜨거운 마음으로부터 불붙으므로.프란시스(그레타 거윅)는 무용수를 ‘꿈꾸는’ 27
윤리적 틀에 사건을 가두고 선악의 이분법적 구분으로 관객을 매도하는 것은 비극적 사건을 묘사하는 영화들의 잦은 실수다. 인물을 따라가는 영화의 몰입적 성격은 필연적으로 ‘감독의 의도대로 사고’하는 메커니즘을 양산하며 이러한 맥락에서 ‘선전 영화’는 어쩌면 영화의 일반적 성격을 극화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여기, 고전적 문법을 탈피한 영화가 있다.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2003)’는 사건을 ‘목격’하게 함으로써 감각적 체험을 선사하고, 감독의 특권으로 여겨졌던 윤리적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돌린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택시 드
긴 시간에 걸쳐 기록된 그들의 사랑 이야기. 그들이 잠시 머물렀던 장소는 곧 명소가 되었고, 그 순간에 흘러나온 노래는 명곡이 되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1995), (2004), (2013). 흔히 ‘비포 시리즈’, ‘비포 3부작’, 혹은 ‘비포 트릴로지’라 불리는 이 작품들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사랑이 어떻게 피어나고, 성숙하고, 또 현실과 마주하는지를 세밀하게 기록한 독특한 연애 서사다. 흘러가 버리기 쉬운 사랑의 순간들을 영화라는 틀에 붙잡아둔 기록물이자, 오랜 시간에
지금 대한민국은 분열의 시대다. 지역감정, 정치적 대립, 이데올로기 갈등 등 서로 다른 집단 사이의 골은 너무 깊어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그 사이의 간극은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 벌어지고, 이제는 단순한 양극화가 아니라 수많은 조각으로 갈라져 파편화되고 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자기 진영의 언어와 프레임 속에만 머물며, 타인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하지만 이런 상황은 결코 한국만의 특수한 현실이 아니다. 세계는 이미 깊은 분열과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키예프 루스라는 같은 역사적 뿌리를 공유하지만, 지금
배우 '톰 크루즈'와 동양, 그것도 일본의 문화가 만난다.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본 한 편의 영화는 내게 일본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사무라이 정신에 대한 인상을 동시에 남겼다. 영화 는 동양의 미학과 서양의 시선을 교차시키며, 그 안에서 문화 간 충돌과 이해의 가능성을 말한다. 개인적으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이 영화는, 동양의 문화를 서정적으로 풀어낸 서구 시점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고 싶다. 어떤 이들은 이 작품이 그것들을 미화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필자의 시선에서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는
의 매력은 드러냄에서 나타난다. 제목에서 보이는 ‘브루탈리즘(Brutalism)’은 건축의 한 양식으로서, 건축에 사용된 소재, 콘크리트와 철근 등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거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영화 스스로가 모든 부분을 드러내는 존재인 브루탈리스트라 칭하고 있다.이 와 더불어, 최근 개봉한 영화 (2024), , (2024)을 유대인 세대의 정체성을 다루는 동시대 작품으로 묶어, 유대인 3부작으로 부르고 싶다. 이 작품들은
는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전작 과 비교를 피할 수 없다. 전투기가 레이싱 카로, '톰 크루즈'가 '브래드 피트'로 바뀐 것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어설픈 변주는 성공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과연 는 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미국적인 색채를 입은 진부한 뉘앙스의 드라마, 레이싱 영화인 만큼 박진감과 생동감이 넘치는 카체이스 연출, 시놉시스에서 예상되는 '브래드 피트'의 남성적인 캐릭터, 두 주연 배우의 차이로 이뤄지는 'Old Man'과 'Young Man'의 대립과 성
포크 음악은 단순한 장르를 넘어 시대의 목소리이자 사회의 양심이었다. 으로 익숙한 제임스 맨골드 감독과 티모시 샬라메가 함께 그려내는 실존 인물 ‘밥 딜런’의 이야기는, 음악영화의 감동을 넘어 한 세대의 초상을 담는다. 은 ‘세상을 향한 노래’의 의미를 되묻는 작품이다. '포크' 장르의 음악적 정서, 밥 딜런,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가진 고유의 고전적인 성향이 과감하고 거침없이 담긴 듯한 영화, 을 다뤄본다.인상적인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뜨겁고 인상적이면서, 가장 바쁘
공포영화를 기피하는 필자에게도 영화 은 이상하게 끌리는 작품이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로 흑인의 정체성과 서사를 강렬하게 표현했던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이름. 둘째, 최근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배우 마이클 B. 조던의 참여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흑인 인종차별을 장르적 장치로 풀어낸 오락영화일 것이라 짐작했지만, 관람 후의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은 단순한 인종서사나 장르적 유희를 넘어, 음악과 역사, 그리고 감독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아낸 깊이 있는 작품이었
봉준호 감독의 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낙관적인 메시지를 품은 작품이다. 전작 이 지독한 리얼리즘으로 사회 구조의 모순을 정밀하게 포착했다면, 은 무국적적 배경과 유려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그 구조에 낙관적 균열을 내는 시도다. 이 세밀한 정물화라면, 은 거대한 벽화의 스케치와 같다. 봉준호의 유쾌한 블랙코미디 데뷔작인 이후 가장 가볍고 부담 없는 톤으로 진행되며, 심지어 보다도 더 밝고 유쾌한 감각을 지닌다. 와 모두 생명체
2020년대 들어 할리우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소재 중 하나를 꼽자면, 단연 '멀티버스'일 것이다. 극장에서 멀티버스를 소재로 하지 않은 할리우드 영화를 찾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작품들이 이 설정을 활용했다. 하지만 많은 멀티버스 영화들 중에서도 새롭거나 놀라운 경험을 주는 작품은 드물었다. 그렇게 멀티버스는 점점 식상하고 진부한 설정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그 와중에 등장한 이 영화는 달랐다. '멀티버스'라는 소재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능동적으로 활용한 드문 사례였다. 이 영화는 왜, 어떻게 다른가?일단 이 영화는 모
이 영화는 부조리한 생존 Sci-Fi와 크리처물의 언저리, 그 중간쯤 어느 지점에서 관객을 흔든다. 나는 이 영화를 꽤나 좋아한다. 영화는 제작비에 비해 건조하고, 동시에 건조하기에는 또 지나치게 느끼하다.본 영화는 상당 부분 나레이션을 이용해 내용을 전달한다. 그 내용은 과학적이며 철학적이고, 어찌 보면 만담처럼 들리기도 한다. 영화 전체의 뼈대를 짜 나가는 데 있어 독백 형식의 설명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누구나 스타워즈의 오프닝 자막을 즐겨 읽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시각적, 시간적 제약 때문에 주로 사용되는 나레이션은 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