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왜 버려졌는지에 대해 앞뒤 설명 없이 영화가 시작된다. 소년 시릴이 전화기 너머 애타게 찾는 대상은 아버지다. 보육원 직원의 만류에도 시릴은 집요하게 수화기를 붙잡는다. 11살 소년에게 영문 모를 아버지와의 단절은 이해되지도 않고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시릴의 무모하고 맹렬한 기세를 꺾은 건 수화기에서 들리는 목소리다.“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아빠는 떠나셨대. 받아들여”“자전거는 어쩌고요?”아버지와의 연락이 끊기고 자전거도 잃어버렸다. 이제 아버지와 살면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소년의 세계는 붕괴되었다. 소년은 무
제1차 세계 대전, 1914년 7월 28일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총 1567일. 에드워드 버거 감독의 영화 는 전쟁의 마지막 5일을 주 무대로 택했다. 1567일에 견주었을 때 약 0.32%에 속하는 아주 자그마한 기간, 이 영화에서 그 시작을 알리는 11월 7일은 독일 전사자들의 인식표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고지된다. “어제가 생일이었군.” 11월 6일생 전사자를 두고 말하는 어느 군인의 목소리를 통해서다. 주인공 파울(필릭스 캐머러)의 경우 생일을 정확히 일주일 앞둔 11월 11일, 불과 몇 초
찬란했던 구월의 한복판을 기억하니? 노랫말을 빌려 너에게 묻는 물음.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의 영화 「로봇 드림」(2023)은 뉴욕에 사는 ‘도그’와 그의 단짝, ‘로봇’의 우정에 대한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구월에 로봇을 떠나보냈던 도그와 그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로봇. 서로는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상황은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별을 받아들인 로봇의 용기는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이별을 놓아주는 방법외롭고 따분했던 도그의 일상을 바꾼 것은 우연히 튼 TV 속의 홈쇼핑 광고였다. 전화로 반려 로봇을 주문한 도그는 로봇
한 가지 염려가 있다. 이 ‘안와르’라는 인물 내면의 먼지를 털어내 큰 충격을 선사하는 작품으로만 소비될까 하는 염려다. 혹자는 그의 구역질을 보며 다시 구역질하고, 분노하고, 탄식하며 영화를 덮어버릴지도 모른다. 그것이 잘못된 독해는 아니다. 그러나 영화의 성취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어딘가 모자란 독해다. 은 단순히 ‘그대들이 저질렀던 만행이 바로 이겁니다’라는 고발이나 감정적 분노를 유발하는 평면적 영화가 아니다.편집이라는 문제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편집’이라는 문제를 짚어야 한다
당신이 알고 있는 ‘백조의 호수’가녀린 무용수가 날갯짓하고, 백조에 매료된 왕자의 애타는 구애가 포개진다. 파란 조명 아래 펼쳐지는 백조의 호수(Swan Lake)의 일반적인 이미지다. 자유를 동경하는 왕자 '지그프리트'는 성년식 무도회에서 왕비가 될 여자를 택해야 했지만, 백조를 사냥하기 위해 화살을 들고 숲으로 향한다. 호숫가에서 백조가 인간 '오데트'로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그녀가 악마 '로트바르트'의 마법에 걸려있으며 진실한 사랑만이 그녀를 해방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된다.왕자는 그녀에게 청혼하고 다음날 무도회에서 만나기
건물의 횡과 종을 유영하는 의 오프닝 시퀀스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과 닮았다. 부유하는 카메라가 멈춰 선 곳은 어디인가? 의 카메라는 휠체어에 앉아있는 제프(제임스 스튜어트)의 두꺼운 깁스를 포커싱한다. 주인공 제프는 창(窓)을 두고 닫힌 안에서 열린 밖을 관음하는 은둔자이자 몸을 숨긴 목격자다. 이와 달리 의 시선은 밖을 향하며, 나아가 그들의 걸음은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또 하나의 벽을 넘는다.데니스에서 여자들로: 수미상관식 여성 해방학 의 카메라는 어디
는 원초적인 감정에서 파생된 다양한 감정을 입체적으로 담아낸다. 두 인물의 관계와 내면에 집중하며, 감정의 밀도를 끌어올리는 영화다. 블루, 파란색은 보통 시원하고 밝은 느낌의 색상이다. 왜 앞에 '가장 따뜻한 색'이란 제목을 붙였을까? 그 이유를 탐구하듯 영화를 보게 된다. 필자는 예고편과 사전 정보로 단순히 '동성애'를 소재로 한 자극적인 영화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는 인간이 경험하는 감정에 매우 솔직한 영화다. 강렬한 감정적인 이끌림과 본능, 그리고 사랑에 대해 영화
타인이 개인의 세계로 침범하는 순간, 인간은 갈림길 앞에 선다. 첫 번째는 배척이다. 타인이 세계에 깊숙하게 들어온 순간, 자아는 이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세계 속에서 타인의 영향을 거부하는 자아는 곧 타인에 대한 적대감으로 나타나고, 타인의 존재를 멀리하게 된다. 두 번째는 적응이다. 타인의 영향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한 유연함을 전제한다. 타인이 세계에 자리 잡을수록, 자아는 타인에 대한 감정을 품으려고 한다. 이러한 배척과 적응은 결코 완전히 나눌 수 없다. 오히려 부유하듯, 타인의 사소한 행위 하나만으로도 변하고 만다.
‘Substance’의 사전적 의미는 ‘물질’, ‘실체’, 혹은 ‘본질’이다. 이 중에서도 ‘본질’이라는 의미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대변하는 데 가장 적절해 보인다. 는 인간의 본질과 그 균열 속에서 피어나는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이 어떤 방식으로 개인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지를 집요하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데미 무어와 마가렛 퀄리의 대조적인 캐스팅은 영화의 핵심 주제를 시각적으로 구체화하며, 이질적인 두 인물의 갈등과 융합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질문을 확장시킨다.‘엘리자베스’ – 데미 무어의 필
‘삼각형’하면 저마다 떠오르는 이미지, 의미들이 있을 것이다. 삼각자, 삼각관계 등. 몇 년 전의 나라면 ‘삼각형’하면 떠오르는 것이 단연 삼각김밥이었겠지만, 지금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슬픔의 삼각형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며, 무슨 의미로 쓰인 것일까. 그리고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영화의 초반, 주인공 ‘칼’의 모델 오디션장에서 그것이 무엇인지는 바로 나온다. 심사를 보는 심사위원들이 ‘칼’에게 “눈썹 사이에 있는 ‘슬픔의 삼각형’을 좀 펴줄 수 있니”라고 말하는
처음 을 보았을 때, 영화의 절반을 건너뛰었다. 대사가 적었고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두 번째 관람에서야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깊은 의미와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샬롯 웰스 감독의 데뷔작인 ‘애프터썬’은 프레임 하나하나가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작품이다.영화는 1990년대 튀르키예로 여행을 떠난 31세 아버지 캘럼과 그의 11살 딸 소피의 이야기를 다룬다. 겉보기에는 밝고 장난기 많은 아버지 캘럼이지만, 그는 세월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고
모두가 이 사람을 범인이라고 지목할 때, 당신은 동조하지 않을 수 있는가.는 한 무고한 남자를 ‘사냥’하듯 죄인으로 몰아가는 사회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사슴에게 겨눴던 총구를 주인공에게로 돌린다. 그리고 한번 주인공에게 조준된 총구는, 끝까지 거둬지지 않는다.루카스에 대한 마녀사냥은 그에게 거절당하고 앙심을 품은 여자아이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어린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명제에 대한 사람들의 절대적 맹신에서 시작된다. 어린아이에게는 피해자, 성인 남성에게는
외계생명체의 샘플을 채취한 우주왕복선이 귀환 중에 사고가 나서 멕시코 지역에 불시착하게 된다. 멕시코와 미국 국경지역이 외계생명체에 의해 생태계가 완전히 바뀌게 되고 미국은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미군을 투입해 외계 오염이 확장되는 것을 억제하고 그 구역을 출입통제 지역으로 지정한다.주인공은 이곳의 현장을 담는 사진 기자로써 사장으로부터 사장의 딸이 멕시코에서 안전하게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돕는 의뢰를 받는다. 안전하게 항구를 통해 여주인공을 보내려고 했으나 사정상 문제가 생기게 되고. 이들은 직접 오염된 구역을 통과하기로 한
얼마 전에 빈 소년합창단의 노래를 듣고 와서인지, 영화를 정할 때 '코러스' 가 먼저 생각났다. 중학교 불어 시간에 선생님께서 보여주셨던 영화인데 인상적이었다는 것만 기억나고 전체적인 내용은 가물가물해서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 영화의 주요 인물인 '모항쥬' 는 유명하고 능력있는, 교향악단의 지휘자이다. 어느 날 어렸을 때 같은 보육원에서 지냈던 친구 '페피노' 가 낡은 일기장을 들고 모항쥬를 찾아온다. 적어도 모항쥬는 이 일기장을 꼭 읽어봐야 한다는 그의 말과 함께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일기장은 보육원에 새로
2009년 8월27일 개봉한 프랑스영화 코코샤넬이다 일명 20세기 패션혁명을 일으킨 여성에 관한 일대기의 일과 사랑에 관한 패션(fashion)영화이다. 또한 많은 기대로 관람을 하거나 개봉을 기다린 분들도 많을 것 같았다. 코코샤넬의 감독은 안느퐁텐 여자감독으로 영화 투마더스 감독을 맡았었다. 또한 여자배우는 영화 아멜리에의 프랑스 배우 오드리토투 인데 샤넬과 비슷하게 분장을 해서인지 마치 샤넬 본인 자신같은 느낌이었다. 여자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여인의 패션 열정을 담아내는데 금상첨화였던 것 같다.프랑스 패션 메종 샤넬(chan
올드맨 무비는 에스토니아에서 2년 동안 공들여 만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비주얼이랑 안 어울리는 선정성과 가학성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너무 뻔하고 유치할까봐 걱정했지만, 그 걱정을 완벽하게 날려버렸다. 성행위를 묘사하는 장면, 전기톱으로 사람을 반으로 가르는 장면 등 확실히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이 영화는 교훈, 메시지보단 순수 재미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들은 영화가 가진 순수한 재미와 작품성보단 그 뒤에 숨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