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생존과 크리처 그 언저리에서

이 영화는 부조리한 생존 Sci-Fi와 크리처물의 언저리, 그 중간쯤 어느 지점에서 관객을 흔든다. 나는 이 영화를 꽤나 좋아한다. 영화는 제작비에 비해 건조하고, 동시에 건조하기에는 또 지나치게 느끼하다.

[미키 17 스틸 컷, 사진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미키 17 스틸 컷, 사진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본 영화는 상당 부분 나레이션을 이용해 내용을 전달한다. 그 내용은 과학적이며 철학적이고, 어찌 보면 만담처럼 들리기도 한다. 영화 전체의 뼈대를 짜 나가는 데 있어 독백 형식의 설명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누구나 스타워즈의 오프닝 자막을 즐겨 읽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각적, 시간적 제약 때문에 주로 사용되는 나레이션은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유용하다. 하지만 이는 영상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며 완결짓는 방식과는 확연히 다르다. 세계관이 방대하지 않은 영화에서 나레이션을 사용하는 것을 단순히 '게으름'이라 평가하긴 어렵다. 오히려 영화 감상을 돕는 유용한 도구일 수 있다. 다만, 그 긴 나레이션을 좀 더 영화적으로 녹여낼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미키 17 스틸 컷, 사진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미키 17 스틸 컷, 사진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이 영화의 독보적인 창의성은 인간을 단순히 복제하거나 새로운 인류와 조우하는 대신, '프린팅'이라는 발상의 전환에서 드러난다. 우리가 흔히 보아온 수면 냉동이라는 사이파이의 전형적 문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영화는 육체와 정신의 재생을 프린팅이라는 방식으로 제시한다. 이 설정은 기존의 상상력을 넘는 신선한 아이디어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이 펼친 이 자유로운 상상력은 결국 촌스러운 우주선 안으로 다시 수렴되고, 클라이맥스는 결국 크리처의 등장으로 귀결된다.

Sci-Fi 영화는 크리처와 미지의 존재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활용해왔다. 본 영화의 크리처는 다행히도 귀엽다. 하지만 그들이 이미 행성에 서식하고 있었으며, 일개미와 여왕 개미 개념이 적용되고, 그들만의 언어가 존재하며, 심지어 번역기까지 도입된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확장된다. 창의적인 설정임에는 분명하지만, 너무 많은 정보가 분산되어 서사의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이쯤 되면 크리처는 단순한 생물이 아니라, 일종의 진화한 나레이션처럼 느껴진다.

[미키 17 스틸 컷, 사진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미키 17 스틸 컷, 사진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영화는 Sci-Fi에 대한 새로운 접근 가능성을 실험했고, 부분적으로는 충분히 흥미로웠다. 하지만 지나친 나레이션의 사용, 진화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크리처 설정, 그리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끝내 제대로 다루지 못한 채 방치한 서사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린팅이라는 개념, 땀내 나는 묘사, 외계어조차 가능한 번역기 설정은 신선하고 도전적이다. 영화는 미완성의 실험처럼 느껴지지만, 동시에 사이파이 장르가 아직도 무한한 변주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점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미키 17 스틸 컷, 사진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미키 17 스틸 컷, 사진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결국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라 그 언저리에서조차 충분히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이 질문들을 밀도 있게 이어갈 또 다른 시도를 기대하게 된다. [영화감독 강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