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버스를 넘어선 성장과 갈등의 힘

2020년대 들어 할리우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소재 중 하나를 꼽자면, 단연 '멀티버스'일 것이다. 극장에서 멀티버스를 소재로 하지 않은 할리우드 영화를 찾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작품들이 이 설정을 활용했다. 하지만 많은 멀티버스 영화들 중에서도 새롭거나 놀라운 경험을 주는 작품은 드물었다. 그렇게 멀티버스는 점점 식상하고 진부한 설정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스틸 컷, 사진 = 소니픽처스코리아]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스틸 컷, 사진 = 소니픽처스코리아]

그 와중에 등장한 이 영화는 달랐다. '멀티버스'라는 소재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능동적으로 활용한 드문 사례였다. 이 영화는 왜, 어떻게 다른가?

일단 이 영화는 모두가 아는 스파이더맨 이야기다. 기존의 멀티버스 영화들이 동일한 인물의 다양한 버전들 간의 차이를 보여주려 했다면, 이 영화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정체성 하나만 공유한 완전히 다른 인물들을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다. A 우주의 주요 인물과 B 우주의 주요 인물이 동일하지 않아도, 둘 다 스파이더맨이기 때문에 연결된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스틸 컷, 사진 = 소니픽처스코리아]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스틸 컷, 사진 = 소니픽처스코리아]

게다가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은 표현의 한계를 한층 더 넓힌다.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시각적 상상력을 실현할 수 있게 하고, 각기 다른 스타일의 스파이더맨들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그려낸다. 이 영화는 그러한 자유로움을 최대한 활용한다. 예를 들어, 마일스는 본인의 우주에서는 영웅이지만, 다른 우주에서는 악당이기도 하다. 그가 잃은 사람이 어느 세계에서는 삼촌이지만, 또 다른 세계에서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단순히 형식적 자유에만 머물지 않는 이유는 '필연적 사건'이라는 서사적 장치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멀티버스 세계의 모든 스파이더맨이 겪어야만 하는 공통된 사건. 그 사건이 발생하지 않거나 어긋난다면 멀티버스 전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설정은, 복잡한 설정에 일관성과 긴장감을 부여한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스틸 컷]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스틸 컷, 사진 = 소니픽처스코리아]

영화 속에서 중요한 '필연적 사건'은 바로 스파이더맨과 가까운 경찰서장이 죽는 것이다. 마일스의 우주에서 경찰서장은 그의 아버지다. 마일스는 그 운명을 막기 위해 싸우고, 다른 스파이더맨들은 멀티버스를 지키기 위해 마일스를 막는다. 이로 인해 후반부는 흥미로운 충돌 구도로 전개된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단순히 멀티버스를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인물 간의 감정적 갈등과 주제의식을 정교하게 엮어낸다. 멀티버스는 이 영화에 있어 도구일 뿐, 진짜 중심에는 마일스라는 인물의 성장과 선택이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멀티버스 영화 중에서도 특별하다.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진부하지 않게, 그러나 복잡함 속에서 감정의 결을 잃지 않게 다룬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이토록 찬사를 받는 이유다. [영화감독 김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