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의 정서로 바라보는 90년대의 한국 사회

영화 <지리멸렬>은 봉준호 감독이 한국영화아카데미 3차 실습 작품으로 제작한 단편이다.

[지리멸렬 스틸 컷]
[지리멸렬 스틸 컷]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은 모두 다 유사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풍자'다.

초기작인 <지리멸렬>에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식인들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인간인가를 꼬집어 조롱한다. 분명 겉으로 보기엔 위엄 있는 자들이지만, 실상은 한심하기 그지없는 모습들을 보인다.

[지리멸렬 스틸 컷]
[지리멸렬 스틸 컷]

제자에게 선정적인 잡지를 들키지 않기 위해 애쓰는 교수, 남의 우유를 훔쳐 먹는 논설위원, 술 먹고 행패 부리다 애먼 곳에 몹쓸 짓을 하는 검사까지.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이 영화가 세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된 단편 영화라는 점이다. 에필로그에서 이 세 명이 진지하게 사회에 대한 논의를 하는 방송이 나오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실상을 모두 아는 관객 입장에서는 헛웃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지리멸렬 스틸 컷]
[지리멸렬 스틸 컷]

대사가 존재하긴 하지만, 극도로 절제되어 정말 필수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대사가 없었던 것도 영화의 작품성을 높이는 장치였다. 특히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주연들의 대사는 없고, 단역의 몇 마디와 난데없이 어설프고 속도감 없는 추격전이 벌어지는데 추격전 같지 않을 정도로 정적이다. 다만 오히려 이런 어색함이 영화의 분위기에 더 도움을 주는 느낌이었다. (이때의 추격전 시퀀스는 이후 봉준호 감독의 첫 장편 영화인 <플란다스의 개>에 영향을 준 듯 보인다. 다만 <플란다스의 개>에서는 <지리멸렬> 때보다 훨씬 역동적으로 연출된다.)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공통된 정서인 '풍자'의 시작점이면서, 가장 날것의 조롱이 담긴 영화다. 젊은 시절의 봉준호 감독의 혈기왕성한 연출이 반영된 듯하다. 

[지리멸렬 스틸 컷]
[지리멸렬 스틸 컷]

아무튼 이 영화는 추천할 만하다. 또한 인상적인 단편이기도 하고, 비교적 오래 전에 제작된 영화지만 여전히 사회를 관통하는 시선이 존재하는 영화다. 우리도 사회적 고위층을 보다 그들의 사회적인 이미지와 다른 그들의 더러운 사적인 행위를 보면 그들에 대한 작은 환상 및 편견이 완전히 박살이 나지 않는가. 현재 이 시기 대한민국에도 여전히 적용되는 셈이다. 하여간, 언제쯤 이런 영화들의 주제가 현재와 동떨어진 그저 옛날 얘기로 취급받을 수 있을는지. 그래서일까? 봉준호 감독은 변하지 않는 사회를 향해서 작품을 통해 꾸준히 조롱하는 듯하다. [영화감독 김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