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보다 유난히 어른스러운 아이들이 있다. 눈치가 빠르고, 자제력이 있으며 어른 같은 태도를 보이는 아이들. 그러나 어른스러움은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자라온 환경 속에서 일찍 철이 들어 만들어진 결과다. 어떤 아이들은 부모를 사랑해서, 부모가 더 이상 힘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어른이 되어간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영화 속 주인공 민혁의 동생 승혁이도 마찬가지였다.
승혁이는 엄마, 아빠, 그리고 ADHD를 앓는 형 민혁이와 함께 산다. 평범하지 않은 형 때문에 많은 것을 참아야 했고, 엄마의 사랑도 양보해야 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이사 가는 날, 엄마와 살고 싶은 승혁이에게 엄마는 말한다.
“승혁이는 어른스러워서 혼자 잘할 수 있을 거야. 엄마 보고 싶어도 잘 참을 수 있지?”
이 말을 할 수 있었던 건, 지금까지 늘 그래왔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였다면 울며 떼를 썼을 상황에서 승혁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다. 고집을 부리면 엄마가 더 힘들어질 걸 알기 때문에 고작 열두 살의 승혁이는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어른스럽다’, ‘일찍 철들었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고, 그 말이 칭찬처럼 느껴져 뿌듯했다. 엄마의 자랑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더욱 어른스럽게 행동하려 애썼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은 진짜 칭찬이 아니었다. 일찍 철든다는 건 그 나이에 누려야 할 자유와 즐거움을 스스로 억누른다는 뜻이고,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지 못한 채 숨겨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어른스러운 아이는 고통을 삼키는 법을 일찍 배운 아이일 뿐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저 “어른스럽다”라는 말로 그들의 인내를 미화하고, 정작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묻지 않는다.
⌜민혁이 동생 승혁이⌟의 감독 역시 그런 아픔을 겪어온 사람이다. 그는 성인이 된 자신의 모습을 “성숙하다기보다 단단하게 굳어버린 느낌”이라고 말했다. 강해 보이는 사람들의 성장기에는 늘 아픔이 있지 않을까,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질문하고 싶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 속 메시지는 정확히 12분 58초에 나온다.
“참으면 아프기만 하잖아”
무채색 옷을 입은 승혁이에게 샛노란 옷을 입은 민혁이가 건넨 말이다. 참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승혁이는 영화의 마지막, 엄마 품에 안겨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얼마나 오래 울고 싶었을까.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어 어른이 되었지만 정작 사랑을 받지 못했던 아이. 그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고, 어린 시절의 나에게도 미안해 눈물이 났다.
영화는 승혁이는 아빠와 민혁이는 엄마와 사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며 끝난다. 원하는 대로 엄마와 살게 되진 않았지만, 이제 더는 형을 보살피지도, 어른이 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아빠 저 오늘 학교 끝나고 엄마랑 형 보러 갈래요.’라며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꺼내는 승혁이를 보며, 나는 그것이야말로 완벽한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김덕근 감독이 대학교 3학년 때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다. 대한민국국제청소년영화제(우수 연기상), 20회 제주국제장애인인권영화제(관객심사단상)에서 수상했고,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한국단편경쟁 부문에 초청될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연출과 영상미 같은 기술적 완성도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어른 아이’라는 스토리와 영화가 담은 메시지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공감될 수 있는 영화, 민혁이의 말이 가슴의 멍을 치유해 주길 바란다. [객원 에디터 김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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