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인터섹스, 남성이나 여성의 신체 정의에 규정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오늘 알게 된다면 어떨 것 같은가? 단편영화 <소라게>는 고등학교 남학생 태영에게 어느 날 여성의 2차 성징이 나타나며 자신이 인터섹스(간성이라고도 불린다)라는 사실을 마주하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영화는 그가 겪는 성 정체성의 혼란과 고민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인터섹스란 염색체, 생식샘, 성호르몬, 성기 등이 전형적인 남성이나 여성의 신체 정의로 규정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남자임에도 가슴이 커지고 초경을 겪거나, 여자임에도 고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그 예다. 대부분의 경우 출생 직후 부모의 선택에 따라 수술을 통해 성별이 정해지지만, 태영은 태어날 때 발견되지 않았고 17년 동안 남성으로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가슴이 자라기 시작하더니 결국 초경까지 겪게 된 것이다. 병원 검사 결과 그는 자신이 인터섹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앞으로 어떤 성별로 살아갈지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누구에게는 간단해 보일 수 있는 선택이지만 태영에게는 결코 쉽지 않았다. 그가 혼란스러워하는 이유는 자신과 친한 동성 친구에게 품은 감정 때문이었다. 그는 남성으로서 남성을 사랑해야 할지, 아니면 여성으로서 남성을 사랑해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이 선택은 되돌릴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었고, 그는 깊은 혼란 속에 빠진다.
그렇기에 나는 그가 17년간 쌓아온 ‘남성으로서의 삶’을 버리지 않길 바랐다. 친구가 다른 여자와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을 졸이는 태영의 장면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남성을 사랑한다고 해서 반드시 여성성을 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남성으로서 남성을 사랑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기에 첫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로 자신의 성별을 서둘러 결정하지 않기를 바랐다.
영화를 보며 특히 중요한 점은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은 서로 다른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성 정체성은 ‘나는 누구인가’, 즉 자신이 스스로를 남성·여성 혹은 그 밖의 정체성으로 인식하는 방식이다. 반면 성적 지향은 ‘나는 누구에게 끌리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이 둘은 연결되기도 하지만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남성으로 정체화한 사람이 남성을 사랑할 수도 있고, 여성으로 정체화한 사람이 여성을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차이를 태영의 혼란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열린 결말로 끝나지만, 관객은 태영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기를 응원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영화 제목은 <소라게>일까? 소라게의 학술적 명칭은 집게인데, 이들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고둥이나 소라의 껍데기를 빌려 산다. 몸이 커지면 더 큰 껍데기를 찾아 끊임없이 이사를 다녀야 한다. 영화 속 태영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몸과 정체성을 어디에, 어떤 외형에 맞출지 선택해야 하는 존재다. 영화에서 직접 소라게가 언급되지는 않지만, 제목의 의미를 관객이 사후적으로 곱씹을 수 있는 장치는 충분히 설득력 있었다.
만약 내가 태영처럼 친한 동성 친구에게 마음이 끌리던 중, 어느 날 자신의 신체에서 인터섹스의 징후가 드러난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여성성을 택할지, 남성성을 유지할지 쉽게 결정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자아 정체성이 막 형성되는 고등학생 시절이라면 혼란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매년 전 세계 신생아의 약 1.7%가 인터섹스로 태어난다고 한다. 대부분 부모의 선택으로 남성 혹은 여성으로 성별이 정해지지만, 그 과정이 당사자의 의지와 무관하다는 점에서 윤리적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소라게>는 이 질문을 개인의 문제로 좁히지 않고, 우리 사회가 함께 성찰해야 할 문제로 던진다. 그렇다면 만약 당신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인터섹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객원 에디터 김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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