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시나리오 작업을 이어온 최상훈 감독은 미국 예술아카데미대학교(AAU) 대학원 영화연출과 석사 과정을 마치고, 2018년 영화 〈속닥속닥〉으로 데뷔했다. 또한 〈태백권〉은 2020년 제40회 하와이 국제영화제 아시안 쇼케이스 스포트라이트 부문 후보,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경쟁 부문 후보에 오르며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개봉을 앞둔 차기작 〈컨설턴트〉는 직접 각본을 맡아, 살아야 사는 보험설계사와 죽어야 사는 장의사 친구의 영업전쟁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냈다. 늘 변화하는 장르 속에서도 자신만의 시선을 지켜온 그는 요즘 들어 AI와 함께하는 시나리오 쓰기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Q. 감독님께 AI 시나리오 쓰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A. 저는 늘 “글쓰기는 고쳐 쓰기다”라고 말해요. 초안은 누구나 쓸 수 있죠. 중요한 건 그걸 몇 번이고 다시 고치고 다듬는 과정이에요. AI는 그 고쳐 쓰기를 훨씬 빠르고 풍부하게 만들어줍니다. 여러 버전을 뚝딱 내주니까 제가 고쳐 쓸 재료가 늘 옆에 있는 거예요. 혼자 쓰는 게 아니라, 든든한 파트너와 함께 작업하는 기분입니다.
Q. 실제 작업에서 어떤 도움을 받으시나요?
A. 발상할 때부터 다릅니다. 같은 로그라인을 던져도 멜로, 느와르, 코미디 버전을 한꺼번에 보여줘요. 캐릭터의 욕망이나 결핍을 정리해주기도 하고, 대사의 리듬을 여러 톤으로 돌려볼 수도 있죠. 제가 직접 쓴 〈컨설턴트〉 작업할 때도 대사 맛 때문에 정말 고생했는데, 지금 같으면 AI로 수십 가지 버전을 바로 실험해봤을 겁니다.
Q. AI가 작가의 개성을 해치지는 않을까요?
A. 많이들 그렇게 걱정하시는데, 사실은 반대예요. AI가 대신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뼈대를 주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 살리고 어떤 색깔을 입히느냐는 결국 제 몫이죠. 저는 오히려 AI 덕분에 제 개성이 더 뚜렷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속닥속닥〉 같은 작품을 각색할 때도 제 톤을 지키려고 수십 번 리라이트했는데, 지금 같으면 훨씬 빠르게 할 수 있었을 거예요.
Q. 일부 작가들은 AI에 대해 비판적인데, 어떻게 보시나요?
A.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노벨문학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작가 허락 없이 작품을 학습하는 건 권리 침해”라고 했잖아요. 맞는 말이에요. 또 할리우드 각본가들은 파업까지 하면서 “작가가 아니라 수정자로 전락할 수 있다”고 외쳤습니다. 저도 그 부분에 공감해요. 결국 AI가 할 수 있는 건 재료를 빨리 주는 거지, 진짜 목소리와 진심은 작가가 지켜야 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늘 되묻습니다. ‘AI 시대에 나는 무엇을 지킬 것인가.’
Q. 리라이트할 때는 어떻게 활용하시나요?
A. 저는 비교를 많이 해요. 같은 장면을 여러 스타일로 쓰게 하고, 그중 마음에 드는 리듬만 골라옵니다. 사건 구조를 다시 짜거나 불필요한 대사를 덜어내는 데도 좋고요. 예전에는 리라이트가 체력전이었는데, 이제는 반복 노동은 AI가 도와주고 저는 더 창의적인 부분에 집중할 수 있어요.
Q. 한국어로 작업할 때는 어떤가요?
A. 솔직히 아직은 어렵습니다. 한글은 뉘앙스가 정말 섬세하거든요. 같은 말도 억양이나 사투리에 따라 맛이 달라요. AI가 그걸 완벽하게 살리진 못합니다. 그래도 곧 한국어 지원이 좋아지면, 사투리와 대사도 훨씬 자연스럽게 구현될 거라고 믿습니다. 그때가 되면 한국적인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대사를 더 잘 쓸 수 있을 거예요.
Q. AI와 같은 신기술을 계속 공부하시려는 이유가 있을까요?
A. 네, 저는 나이가 들어도 요즘 젊은 감성을 배우는 게 굉장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세상이 빨리 변하는데 그걸 외면하면 결국 낡은 이야기만 하게 되거든요. 오히려 요즘 친구들의 말투나 감각적인 대사를 배우고 제 안에서 소화하는 게 필요해요. AI가 이런 부분에서도 도움이 됩니다. 요즘 친구들이 쓰는 표현들을 보여주니까, 제가 그걸 보면서 배우고 제 톤과 섞어가는 거죠.
Q. 앞으로 AI 시나리오 쓰기의 미래를 어떻게 보시나요?
A. 저는 단순히 글을 보조하는 걸 넘어서, 콘티 이미지, 배경 음악, 제작비 시뮬레이션까지 이어질 거라고 봅니다. 감독은 더 빠르게 시각화를 할 수 있고, 작가는 자기 대사가 화면에서 어떻게 울릴지 바로 확인할 수 있겠죠. 결국 시나리오 쓰기는 더 멀티미디어적이고, 더 종합적인 작업으로 확장될 겁니다.
Q. 마지막으로 독자와 후배 창작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A. 두려워하지 말고 AI를 써보세요. AI는 경쟁자가 아니라 파트너입니다. 저도 20년 동안 글을 쓰면서 수없이 벽에 부딪혔는데, 이제는 든든한 파트너를 곁에 두고 작업하는 기분이에요. 다만 해외 작가들이 경고한 것처럼, AI가 우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그 진심이에요. 그 진심만 지켜낸다면 AI는 분명히 든든한 날개가 될 겁니다.
AI 시나리오 쓰기는 지금 전 세계적인 논쟁의 한가운데 있다.
저작권 침해, 작가의 고용 불안, 창작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최상훈 감독은 AI는 이야기를 대신 써주지 않으며, 작가의 목소리를 더 빛내주는 반사판일 뿐이라고 깊이 있는 생각을 보였다.
그는 국내외 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한 〈레디〉와 〈짐〉에 이어, 단편 〈덤〉 촬영과 OTT 드라마 〈오산공고〉 8부작 집필에도 매진하며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편집장 김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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