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들의 집은 또 다른 섬들을 기다린다
누군가가 사랑에 대해서 그렇게 설명하였다. 사랑이란 건 그 대상을 자기화 시키는 거라고. 사랑하는 상대를 나와 다른 대상이 아닌 자신과 일치시킴으로 그 가치를 자기 자신만큼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이 작품은 어쩌면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감미로운 멜로디, 달콤한 목소리, 아스라이 흩날리는 조명 불빛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이내 불안한 듯 홀로 앉아있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관객석에서 담고 있는 캠코더 화면 안에서 흔들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 너머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이 작품은 음악을 소재로 하는 작품인 만큼 귀가 즐거운 영화이다. 보글보글 국 끓는 소리, 연습실 안을 가득 채우는 타닥타닥 거리는 키보드 소리, 악보에 닿아 사각거리며 가사로 변해가는 연필 소리, 입 안에서 아삭아삭 부서지는 과자 소리. 거짓말을 자백하게 만드는 꼬르륵 소리 등 굳이 주요한 소재로 이용된 음악이 아니더라도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래서 그런가 각 인물들마다 소통이 끊기고 분절이 될 때마다 그들의 소리는 단절되어 있다. 저마다의 입장과 상황에 따라 헤드폰으로 혹은 녹음실 방음 부스 벽에 가로막혀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서로가 단절되어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달라져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서로 하나가 될 수 없다는 사실만 변하지 않을 뿐 모든 것이 변한다. 다 같이 모여 음악이란 한 가지의 목표를 위해 땀 흘렸을 연습실도 뜨거운 한때를 함께 했던 소중했던 사람들도 따뜻한 체온으로 안식처가 되어주던 하숙집도 영원할 수 없다. 모든 것은 변하고 언젠간 끝이 난다.
그래서 불안한 것인지도 모른다. 극 중의 섬들도, 이 작품을 보고 있는 우리들도.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시간의 흐름에 가라앉아 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섬들처럼 끊임없이 저 멀리 보이는 다른 섬들을 향해 나의 존재를 확인 받으며 잠시 잠깐을 위안 받으면서 오늘을 견뎌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밤이 된다면 우리는 그 외로움을 어떻게 견뎌내야만 하는 것일까. 이 작품은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는 그 어두운 밤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하숙집이라는 정보가 없었다면 친척일까 가족일까, 엄마 품처럼 포근한 하숙집 주인 혜옥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었다. 서로가 합치면 누군가 먼저 떠나가도 견딜만한 커다란 땅이 될 거라고. 깻잎 논쟁 따윈 가볍게 비웃으며 너무나 다정하게 반찬을 떼어 주실 줄 아시는 대범한 용기를 가진 해옥님조차도 아련히 떨어지는 시선 너머 비추는 추억을 통해 그분 역시 과거 지안이 겪었던 그런 혼란을 겪고 성장해 왔음을 보여준다.
지금을 놓치고 싶지 않아 정말 간절하게 연습실을 지키고자 했던 지안의 말에 누구보다 자신을 이해해 줄 거라고 믿었던 시원은 잔인하게 현실을 말하며 그것이 불가능한 꿈임을 일깨운다. 지안의 커피 취향조차도 모두 알고 있을 만큼 가까웠던 시원에게 응석 같은 투정도 부려보지만 오히려 엇박차처럼 일그러지는 관계들만 더욱 선명해질 뿐이다. 누구보다 가까웠을,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가까웠던 섬이라고 생각했던 섬이 그 어느 존재보다 멀리 있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일그러진 공간감에서 오는 아득함으로 혼란스러워진 지안은 위태롭게 흔들거렸지만 가장 멀리 떠나버린 하나란 섬이 남긴 글을 통해 풀리지 않던 악보의 빈 공간을 채운다.
눈물에 가라앉아버리지 않도록, 너무 깊어지지 말라며 다정히 내미는 물 한 잔에 담긴 체온으로 지안은 공연 날을 맞이한다. 눈물겹게 뭉클한 음악, 가슴 시린 이야기가 담긴 가사가 저마다의 모습을 비추며 물들어간다. 공허하게 텅 빈 눈빛,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름다웠던 지난 날, 돌아올 수 없는 하나의 자리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기타, 소중했던 추억.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모두가 같은 음악을 공유하며 함께 연주하고 다 함께 노래 부른다.
이 이야기는 변할 수 없는 진리를 애써 거스르려 하지 않고 담담하게 내일을 마주하며 끝을 맺는다. 너무나 아름답게 그리고 너무나 의연하게. 그래서 더욱 그 마지막에 우리가 마주하는 감동이 크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거스를 수 없는 진리, 모든 것은 변하고 어느 누구도 나 자신이 될 수 없음에 애써 그것을 되돌리려 하지 않고 남이 내가 된다는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지 않고 지안은 용기 있는 발걸음으로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섬들의 집은 또 다른 섬들을 기다리면서.
이 작품은 볼 때마다 너무 큰 울림이 마음에 남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굉장한 영화를 만든 사람이 아직 약관의 나이인 대학생들이라는 점이다. 담고 있는 주제나 소재로 사용한 음악을 활용한 방법, 캐릭터의 개성과 입체감 그리고 그 안에서 오가는 섬세한 감정선과 그걸 연주하는 배우들의 모습까지. 이 작품은 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다. 그런 작품을 아직 대학생인 젊은 영화인들이 만들어냈다니…… 앞으로 이들이 새롭게 만들어갈 작품이 과연 얼마나 멋지게 세상에 나와 또다시 우리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줄지 기대하게 만든다. [기자 유현재]
섬들의 집(Welcome Home, Islands)
각본 / 연출 이유진
출연 최영서 김미혜 강정묵 김정연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