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음 앞에서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

노년의 사랑은 죽음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젊은이들의 그것보다 더 서글프다. 영화에는 두 커플이 등장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동반자살을 택한 커플과,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짐을 택한 커플. 이 두 커플의 최후 행동의 기반에는 서로를 갈라놓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다. 그렇기에 이 두 커플의 서로 다른 선택은 ‘어떻게 죽음 앞에 사랑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스틸 컷]
[그대를 사랑합니다 스틸 컷]

먼저 만석과 이뿐의 사랑을 말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부터 살펴봐야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 시인의 시를 재현하듯, 만석은 송씨에게 이름을 붙여준다. ‘송이뿐’이라는 이름은 주어가 생략되어 있다. 그 이름에는 ‘만석은 송이 뿐’이라는, 풀네임이자 속뜻이 존재한다. 즉 만석은 송씨를 자신에게, 자신을 송씨에게 귀속시키는 것인데, 이는 어떤 로맨틱한 저주와도 같다. ‘만석은 송이 뿐’이라는 풀네임에서 ‘만석’이라는 주어가 사라지면 송씨는 ‘송이뿐’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즉 만석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를 생각했을 때, 이뿐이 헤어지자는 말을 건네는 것은 인과적인 결말이다. 언뜻 보아 이는 죽음에의 회피 전략으로 보이나, 사실은 너를 존재하게 함으로 나도 존재하게 하겠다는 뜻깊은 결심이다. 그녀가 만석의 죽음을 마주하지 않는다면 만석은 계속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만석은 송이 뿐’에서 만석이 지워지지 않는 이상, 그들의 사랑은 지속된다. 결론적으로 ‘어떻게 죽음 앞에 사랑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둘은 ‘죽음 앞에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살아있게 하는 것이다’라는 답을 한 것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스틸 컷]
[그대를 사랑합니다 스틸 컷]

다음으로 군봉의 대답을 살펴보면 (극 중 치매에 걸린 노인이기에 그들의 동반자살은 사실 군봉의 일방적인 살해이며 이것은 군봉의 일방적 대답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대답에는 어떤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뉘앙스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죽음으로 인한 이별, 헤어짐을 우회하기 위해 군봉이 택한 것은 죽음에의 정면돌파기 때문이다. ‘어떻게 죽음 앞에 사랑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군봉은 ‘죽음 앞에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죽는 것이다’라고 답한 것이나 다름없다. 말하자면 군봉은 ‘헤어질 결심’의 서래가 택한 것, 바로 현실 속 선택지에서 헤어짐을 온전히 누락시키는 것으로 사랑을 영원히 지속하기 위해 자살을 택한 것이다.

결국 이 두 커플의 답은 사랑의 지속이다. 두 커플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노년의 사랑에 결부된 필연적 죽음을 초월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영화가 담고 있는 것은 노인들의 지루한 사랑 얘기가 아니다. 이 영화가 진실히 담고 있는 것은, 들려오는 장송곡을 애절한 러브송으로 바꾸려는 노인들의 적극적 몸짓이 담긴, 사랑에 대한 처절한 생존기다. [영화감독 서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