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의 절교가 가져오는 파장
두 남성의 우정이 깨졌다. 매일 같이 함께 마시던 술도 끊겼다. 파우릭은 갑자기 식어버린 콜룸의 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아예 과거와 현재 미래의 우정까지도 사라져 버린 것처럼 파우릭은 당황스럽다. 감독은 모두가 모두를 아는 이니셰린이라는 마을을 전경으로 보여주며 서로가 교류하는 한 작은 마을을 묘사하면서도 마을의 절벽과 바다에 근접해 있는 바윗덩이들과 세찬 바닷바람을 보여주며 극적 고립감과 긴장감을 더한다.
영화는 친구의 관계가 금이 갔고 다시 회복하려는 자와 다시는 회복하지 않으려 하는 두 남자의 절교가 가져올 파장을 보여준다. 하지만 절교를 선언한 콜룸은 다시는 자신에게 말을 걸지 말라는 선언을 한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콜룸이 자신이 말한 대로 자기 손가락을 자른 후 파우릭의 집 현관문에 던진 일이다. 바이올린 연주를 무척 좋아하는 것처럼 묘사된 콜룸이 더 이상 바이올린을 칠 수 없도록 스스로를 망가뜨려 버린 것이다. 이걸 단순히 블랙 코미디의 범주로 포장할 수 있을까?
이건 블랙 코미디라고 하기에는 너무 사실적이며 사실적이라고 하기에 너무 판타지답다. 차라리 배우들의 초반 행동을 통해서 시니컬한 기조를 만든 이후에 손가락 장면이 나온다면 블랙 코미디라고 우리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영화의 블랙 코미디는 앞뒤가 바뀌었다. 파우릭이 콜룸에게 왜 자신에게 이리도 척을 두려고 하느냐고 집요하게 묻자 콜룸은 간단하게 대답한다. “You are dull (네가 바보니까)” 하지만 진짜로 dull한 사람은 누구인가? 부정적인 말은 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에게 파우릭이 말을 걸었다는 이유로 손가락을 잘라버린 dull한 인물은 누구인가? 파우릭이 조금은 예민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해도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누가 더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대화가 통하지 않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가?
아무리 콜룸이 자기 손가락을 잘라가면서 말해도 그 메시지가 파우릭에게는 닿지 않는다. 바로 dull한 파우릭에게 가장 이해하기 쉬운 대화를 그만두고 가장 해괴망측한 방식으로 제 뜻을 전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대화가 상실된 상태에서 표현은 어디까지 가능하며 그 결과는 무엇일 될 수 있는가 자문한다. 쿨룸은 확신한 것이다. 나는 이 무딘 자식(파우릭)을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 그리고 대화도 하지 않을 것이며 그래도 이 자가 알아듣지 못한다면 내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 하지만 이리도 결기 있는 행동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단순히 블랙 코미디의 범주에 포함할 수 있을까? [영화감독 강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