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와 독립영화, 웹드라마 등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는 최지환 배우를 만났다. 올해 초 드라마 <약한영웅 Class 2>를 통해 매체 연기에 첫발을 내딛은 그는 이제 직접 쓴 희곡 <가족 대행>으로 대학로 무대에 오른다. 스스로 쓴 대사를 자신의 몸으로 연기하면서 그는 배우뿐만 아니라 연출가로서도 성장하고 있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한 배우가 어떻게 자신만의 경험을 쌓아가고 있는지 세심히 들여다보았다.

[최지환 배우, 사진 = 김현승]
[최지환 배우, 사진 = 김현승]

최근 배우로서의 근황은 어떠신가요?

지금은 연극 <가족 대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학로에서 11월 21일, 토요일에 공연을 올릴 예정이에요. 2인극이라 두 명이서 약 30분 동안 공연을 진행하는데, 둘 다 주인공인 작품이에요. 지금은 막바지 리허설을 하고 있고, 각자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하려고 많이 노력 중이에요.

직접 쓰신 작품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네, 이번 작품은 제가 직접 쓴 오리지널 희곡이에요. ‘애완 자녀’로 자라난 주인공이 ‘가족 대행’이라는 일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어요.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안락사를 선택한 노인과 함께하게 되면서 생기는 감정적인 변화와 사건들이 중심이에요. 저는 그 안락사를 택한 노인 역할을 맡았고요. 짧은 시간 안에 삶과 죽음, 그리고 관계의 의미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언제부터 준비하셨나요?

8월부터 준비를 시작했어요. 처음엔 대본을 쓰고 다듬는 데 시간을 많이 썼고, 9월부터 본격적으로 리딩과 리허설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거의 넉 달 정도 꾸준히 준비한 셈이에요.

이번 작업은 기존과는 어떤 점이 달랐나요?

제가 예전에도 대본을 쓴 적은 있었는데, 정식 공연으로 올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예전에는 제가 연출만 맡았거든요. 근데 이번엔 직접 쓴 대본을 가지고 연기까지 하다 보니까 확실히 체감이 다릅니다.

연출만 할 때는 배우들이 하는 게 되게 쉬워 보여요. “이건 이런 상황이니까 이렇게 하면 돼요” 하고 쉽게 설명하던 걸, 막상 제가 직접 연기를 하려니까 그게 안 되더라고요. 이해는 되어 있는데 몸으로 표현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어요. 그런 차이점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멈춰선 지하철' 스틸 컷, 사진 = 씨엠닉스]
['멈춰선 지하철' 스틸 컷, 사진 = 씨엠닉스]

연기를 처음 시작한 건 언제인가요?

군 제대 이후부터예요. 제가 23살쯤이었는데, 그때부터 조금씩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24살쯤에는 친구가 연출한 작품에서 낭독극을 했고, 직장인 극단에도 들어가서 무대 경험을 쌓았어요. 그때부터 연기가 점점 제 인생의 중심이 됐던 것 같아요.

정식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하신 시점은 언제인가요?

정식으로 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건 올해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올해 초에 우연한 기회로 <약한영웅 Class 2>라는 드라마에 이미지 단역으로 출연하게 됐는데, 그게 제 첫 매체 연기였어요. 그 작품을 계기로 본격적인 배우 활동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죠. 이후에는 서울필름아카데미의 이지승 감독님 작품인 <멈춰선 지하철>에 출연했어요. 그 작품이 영화제에도 초청받고 상도 받아서 저한테는 의미가 큰 경험이었습니다.

<약한영웅 Class 2>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으셨나요?

<약한영웅 Class 2>에선 볼링장 앞에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일진 중 한 명으로 나왔어요. 회차로는 3회차 장면이었고, 밤새서 하루 동안 촬영했어요. 주연 배우들과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직접적인 연기는 많지 않았고, 그래도 현장의 분위기나 긴장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그때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섰을 때의 공기랄까, 그런 걸 느꼈죠.

오디션은 어떤 방식으로 보셨나요?

그때는 영상 오디션으로 봤어요. ‘일진 역할을 맡을 의향이 있냐’고 연락이 와서, 바로 연습실 가서 대사 몇 개를 연습하고 급하게 영상을 찍어 보냈어요. 사실 준비할 시간도 없었는데, 오히려 그 자연스러움이 좋게 보였던 것 같아요.

[최지환 배우, 사진 = 김현승]
[최지환 배우, 사진 = 김현승]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은 어디인가요?

역시 <멈춰선 지하철>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상대 배우였던 김보나 배우님이 정말 인상적이었거든요.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눈물을 흘려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몇 번을 반복해도 정확히 같은 타이밍에 감정을 터뜨리시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아, 이게 진짜 프로구나” 느꼈어요. 저도 같은 현장에서 연기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스스로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계속 ‘알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직 제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도 확실히 정의를 못 내리겠어요. 하고 싶은 일도 계속 바뀌고, 관심사도 늘 변해요. 어릴 땐 축구 선수를 꿈꾸다가, 웹툰 작가나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적도 있고, 한때는 변호사를 꿈꾸기도 했어요. 그만큼 저 자신을 규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연기를 하면서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내 연기를 보고 사람들이 뭔가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점점 그 중심이 저 자신으로 옮겨오더라고요. 어떤 캐릭터와 완전히 동화되어서 그 사람의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을 때,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해요. 그 감정이 저를 계속 연기하게 만드는 원동력 같아요.

좋은 연기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감독님이 요구하는 연기가 결국 좋은 연기라고 생각해요. 단역이나 조연일 때는 캐릭터의 스테레오타입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고, 주연으로 갈수록 그 인물만의 내면과 깊이를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예를 들어 의사 단역이라면 의사답게 보이는 게 1차적인 목표지만, 이 의사가 주연이라면 '이 의사는 어떤 점이 다를까'를 고민해야 하죠.

['루프탑 오디세이' 스틸 컷, 사진 = 씨엠닉스]
['루프탑 오디세이' 스틸 컷, 사진 = 씨엠닉스]

연기를 하며 가장 어려운 점은요?

좋은 연기를 한다는 건 결국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일인 것 같아요. 감독님의 디렉션을 듣고 즉시 반응하면서도, 제 안의 감정과 해석을 동시에 유지해야 하거든요. 그 두 가지를 유연하게 오가야 한다는 게 가장 어렵지만, 또 가장 재미있는 지점이기도 해요.

배우로서 느끼는 장단점이 있다면요?

단점은 아무래도 불안정하다는 거죠.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수입이 일정하지 않고,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어요. 그리고 보조출연이나 이미지 단역을 맡는 경우도 있는데, 보조출연은 시급제지만, 이미지 단역은 회차별로만 받아서 금액의 차이가 있거든요. 이걸 악용하시는 분들도 있어서 이런 쪽으로 살짝 고충이 있어요. 하지만 대신 장점은 정말 많아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죠. 특히 연기를 통해 사람을 많이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배우를 하기로 마음먹은 계기는요?

군대에 있을 때 생각할 시간이 많았어요. 앞으로 뭘 하면서 살아야 행복할지 고민하다가, 예술 쪽 일을 하고 싶다는 결론에 닿았죠. 글이나 그림처럼 간접적인 표현도 좋지만, 배우의 연기는 몸으로 직접 감정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가장 본질적인 예술이라고 느꼈어요. 그렇게 연기를 시작했고, 제 예상대로 너무 잘 맞아서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느끼기에 가장 도전적인 작품은 뭔가요?

지금 준비 중인 <가족 대행>이에요. 감정 변화가 많고, 30분 안에 웃었다가 울었다가를 반복해야 하거든요. 무대에서 실시간으로 감정이 오가는 연극이라 정말 도전적이에요.

[최지환 배우, 사진 = 김현승]
[최지환 배우, 사진 = 김현승]

감독과 해석이 달랐던 적이 있나요?

크게 부딪친 적은 없어요. 늘 감독님이 원하는 게 뭔지 먼저 이해하려고 해요. 그걸 제 방식으로 소화해서 표현하는 게 배우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기하기 가장 어려웠던 역할은 무엇이었나요?

이지승 감독님의 단편 <인간 검증>에서 AI 캐릭터를 연기했을 때요. 인간 같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를 표현해야 했는데, 그 미묘한 경계를 잡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감독님이 지금의 AI는 과거처럼 기계적이지 않다고 하셔서, 자연스러움 속에서 비인간성을 살리는 게 관건이었어요.

배우로서 성장했다고 느낀 순간이 있나요?

예전엔 겉으로 보이는 표현에 집중했어요. 그런데 김보나 배우님의 연기를 보고, 단순히 잘하는 걸 넘어서 ‘진짜 믿어지는 연기’가 뭔지 느꼈죠. 그 이후로 제 연기에 대한 태도도 많이 달라졌어요. 표현보다 진심에 더 집중하게 됐습니다.

롤모델로 삼는 배우가 있나요?

국내에서는 이병헌 배우님이요. 최근에 <어쩔수가없다> 에서 면접 보는 장면의 클립을 봤는데, 1초 만에 그 캐릭터의 상황이 느껴지더라고요. 그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해외에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나 <레버넌트> 같은 작품을 보면 한 배우가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나 싶어요. 정말 존경합니다.

['인간검증' 촬영 현장, 사진 = 씨엠닉스]
['인간검증' 촬영 현장, 사진 = 씨엠닉스]

좋아하는 연극과 영화는요?

연극은 <정의의 사람들>을 좋아하고, 영화는 <포레스트 검프>와 <버닝>을 좋아해요. 〈<포레스트 검프>는 삶을 따뜻하게 바라보게 해주고, <버닝>은 오랫동안 생각을 남기는 작품이에요. 둘 다 사람을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죠.

연기를 준비할 때는 어떤 방식으로 하시나요?

먼저 머릿속에 영화관 스크린을 떠올려요. 내가 이 장면을 보고 있다면 어떤 그림일까 상상한 뒤, 대본으로 옮겨 읽어요. 실제로 말로 해보면 이상하게 들릴 때가 많아요. 그럴 땐 반대로 해보기도 하고, 웃으면서 말해보다가 화내며 말해보기도 하면서 조율해요.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인물은 어떤 사람인지 감이 옵니다.

배우 일 외에 다른 일도 하시나요?

네, 오전에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이후에는 식당으로 가서 서빙이나 간단한 요리를 도와요. 주 5일 정도 일하고 있고, 다행히도 사장님과 관계가 좋아서 촬영이 잡히면 쉬게 해주세요.

오디션을 볼 때는 어떤 식으로 준비하시나요?

지금 당장 자신 있는 자유 연기 하나, 그리고 그 반대 성격의 연기 하나를 준비해요. 지정 대본이 있으면 그 톤과 반대되는 것도 하나 더 연습하죠.

자유 연기는 <올드보이>의 유지태 장면을 했던 적도 있고, <동네 변호사 조들호>의 법정 신을 연습한 적도 있어요. 또 어떤 오디션에서는 아예 대본이 없어서, 제가 직접 캐릭터를 만들어서 갔어요. 대학생 선배 같은 차분한 이미지의 역할이었는데, 어울리는 대본이 없어서 즉석에서 창작해서 연기했죠.

[최지환 배우, 사진 = 김현승]
[최지환 배우, 사진 = 김현승]

매체마다 촬영 분위기가 다르던가요?

확실히 달라요. 연극은 현장 에너지와 즉흥성이 크고, 광고는 세팅에 시간을 거의 다 써요. 실제 촬영은 짧지만 그만큼 집중도가 높아요. 유튜브 웹드라마는 제작 규모에 따라 다른데, 소규모는 즉흥적이고, 대규모는 드라마처럼 멀티캠을 써서 효율적으로 진행해요. 드라마는 카메라 여러 대로 빠르게 찍고, 영화는 한 장면에 훨씬 집중하죠.

무대 연기와 매체 연기의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저는 없다고 생각해요. 기술적으로는 발성이나 동선이 다르지만, 진짜로 그 상황을 믿고 행동하면 어떤 무대든 통한다고 믿어요.

앞으로의 일정이 궁금합니다.

김현승 감독님의 단편영화 <영화 찍으러 가는 길> 촬영이 예정돼 있고요. 내년 1월쯤에는 <가족 대행>의 풀 버전 80분짜리 공연을 계획 중이에요. 이번에 하는 30분 버전은 일종의 축약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니들 또 남자끼리 연말 집합할 거야?' 캡처 사진 / 사진 = 최지환 배우 인스타그램, 유튜브 '예상치 못한 필름']
['니들 또 남자끼리 연말 집합할 거야?' 캡처 사진 / 사진 = 최지환 배우 인스타그램, 유튜브 '예상치 못한 필름']

30분과 80분 공연 중 어느 쪽이 더 부담되나요?

30분짜리는 짧은 만큼 임팩트를 줘야 해서 더 집중해야 하고, 80분짜리는 체력적으로 힘들어요. 짧을수록 순간의 밀도가 중요하고, 길수록 체력이 관건이죠. 결국 둘 다 각각의 이유로 부담되는 건 비슷한 거 같아요.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신가요?

‘역할을 나로 만드는 배우’보다 ‘인물이 되어버리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나중에는 카메라가 사랑하는 배우라는 말도 듣고 싶고요. 지금은 전종서, 구교환, 손석구, 노재원 배우님들처럼 “뭔가 다른데?”라는 인상을 주는 배우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멈춰선 지하철' 촬영 현장, 사진 = 씨엠닉스]
['멈춰선 지하철' 촬영 현장, 사진 = 씨엠닉스]

최지환 배우의 이야기는, ‘연기’라는 행위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스스로를 탐구하는 과정임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그는 겸손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라 말했지만, 그 말 속에는 인물에 완전히 스며드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의 다짐이 드러난다. 배우라는 직업의 본질을 보여준 최지환 배우가 앞으로 만들어낼 다양한 인물상들을 기대해본다. [편집장 김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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