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 류스케와 안톤 체홉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작품은 안톤 체홉을 연상시킨다. 초기작부터 보인 연극적 요소와 더불어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보인 「바냐 아저씨」가 뇌리에 박힌 것 같다. 특히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배경이 되는 숲과 자연에 대한 이야기가 이를 배가 시킨다.
「바냐 아저씨」에서 아스트로프는 숲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힌다. 현재 무차별적인 개발로 인해 숲이 파괴되고 있음은, 모두 알고 있다시피 체홉 본인을 투영한 캐릭터인 아스트로프의 입을 빌려, 자신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전달한 대목이다. 그는 많은 작품에서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행위를 매우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시골에 글램핑(Glamping)을 유치하기 위해 방문한 외지인과 마을 사람들의 갈등이 주된 사건이다. 타쿠미를 포함한 모든 마을 사람들이 글램핑 착공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샘물을 사용하여 국수를 만들고, 깃털을 주워 사용하는 등의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달리, 자연의 소중함을 모르는 외지인들이 대립하는 것은 당연하다.
숲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를 외지인이라 칭할 만큼 조심스럽게 숲을 대한다. 조화를 무시하고, 일차원적인 계산을 통해 숲을 개척하려는 연예 기획사와는 상반되는 태도이다. 숲은 모두를 포용하지만, 그 안에서는 룰(Rule)이 존재하고, 반드시 서로 간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가진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안톤 체홉의 사유는 서로를 관통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악(惡)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음향은 가장 강력한 내러티브 장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소리들이, 곧 보이지 않는 악으로 기능한다. 특히 하마구치는 인공적인 소음을 자연의 소리와 교묘히 겹치게 하여, 관객이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게 만든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무감각하게 지나치는 환경 파괴의 소리이기도 하다.
마을 근처에서 울리는 단발성 총소리는 불안을 일으키며, 사냥의 대상인 사슴뿐 아니라 마을 사람, 나아가 관객에게까지 공포를 확산시킨다. 오프닝의 톱 소리 또한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숲의 이미지와 대조되는 인공적 마찰음은 귀를 거슬리게 하고, 이 불협화음이야말로 관객이 이미 자연의 리듬에 동화되었음을 입증한다. 영화 후반부까지 이어지는 이러한 청각적 긴장은 외지인들의 총소리, 거칠게 단절되는 음악, 그리고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기획자의 음성으로 확장된다. 보이지 않는 이 소리들은 실체 없는 위협으로 작용하며, 결국 자연을 파괴하는 오브제들이 악(惡) 임을 감각적으로 각인시킨다.
나비효과
중반부를 지나며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서의 악에 대한 영향이 조금 더 세분화된다. 글램핑을 통해 도시와 시골이라는 큰 틀로 나눴던 분리는, 개인에게로까지 파편화한다. 이때 물이라는 소재로 분리 작업을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에겐 생명수와 같은 물이 외지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하수시설은 어떻게든 절차만 넘기면 되는 하나의 퍼즐 조각처럼 치부한다.
반면 이 ―외부인들은 하찮게 바라보는― 물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매우 소중하다. 생활용수이자, 농업용수, 심지어 식재료로까지 활용된다. 단지 몇 미터의 하수시설 위치의 변화가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끼친다. 더 나아가 이 영향은 무수히 많은 결로 찢어져, 끝을 알 수 없는 작용이 발현될 것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라는 이 물리법칙과 마찬가지로, 위에서 일어난 사건은 반드시 아래에 영향을 준다. 권력을 가진 이들의 경솔한 행동이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실체를 드러내지 않던 기획자는 끝까지 모습을 드러나지 않은 채, 외부의 카메라를 통해 목소리만으로 등장한다. 보이지 않는 문제(기획자의 목소리)가 시각화되는 순간의 포착이다. 작은 기획 내용 하나가 마을 하나를 완전히 망쳐버릴 수 있다. [객원 에디터 이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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