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초입, 용산의 한 카페에서 안창복 배우를 만났다. 영화 <루프탑 오디세이> 등 다양한 단편과 연극을 오가며 차근차근 자신만의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그는 무대와 매체 사이의 에너지 밀도를 이야기했고, 배우로서의 성장과 생계, 그리고 한국 콘텐츠 산업의 흐름에 대한 생각까지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다음은 일문일답과 서술을 엮은 인터뷰 전문이다.

[배우 안창복, 사진 = 김현승]
[배우 안창복, 사진 = 김현승]

Q. 요즘 근황이 어떠신가요?

A. 올해 11월 중순 대학로에서 30분짜리 2인극 〈가족 대행〉을 올릴 예정입니다. 핵가족이 세분화되고 분열된 미래, 연애와 가족마저 대행 서비스로 대체되는 사회를 다루는 작품이에요. 제가 맡은 ‘김철수’는 인공자궁 회사를 다니는 인물인데, ‘과연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캐릭터입니다. 죽음도 스스로 선택하고 약으로 영생까지 가능한 시대에, 가족의 의미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요. 연습하면서 저 스스로도 많이 고민하게 됩니다.

Q. 배우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군 전역 후 2015년 극단 ‘초인’에서 연극을 시작했습니다. 교정 치료로 무대 활동이 어려운 시기에는 성악을 배우며 뮤지컬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입시는 실패했지만, 노래를 통해 호흡과 몸, 발성을 다시 배우게 된 시간이었죠.

그 후 2014년 여름 ‘호야 매니지먼트’와 인연을 맺으면서 본격적으로 매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으로 동기부여가 되었던 건 직장인 연극 동호회 활동이었어요. 〈헬로우 고스트〉를 각색해 주인공 역할을 맡아 무대에 올랐는데, 끝나고 난 뒤 묘한 아쉬움과 쾌감이 남더라고요. 그 경험이 ‘나는 배우로 살아야겠다’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루프탑 오디세이' 스틸 컷, 사진 = 씨엠닉스]
['루프탑 오디세이' 스틸 컷, 사진 = 씨엠닉스]

Q. 요즘은 어떻게 생활을 꾸려가고 있나요?

A. 아침에는 건물 청소 일을 합니다. 배우 일정이 주로 낮이나 오후에 잡히다 보니, 오전에 일을 몰아서 하고 이후엔 미팅과 연습에 집중할 수 있게 시간을 조율하는 거죠.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결국 연기를 위해 가장 유연한 방법이 이거라고 생각합니다.

Q. 무대와 매체 연기의 차이를 어떻게 느끼시나요?

A. 핵심은 에너지의 밀도라고 생각합니다. 무대는 객석 뒤쪽까지 닿아야 하니 에너지를 크게 퍼뜨려야 하고, 매체 연기는 그 에너지를 응축할수록 더 선명해지죠.

그리고 연기를 할 때 카메라는 ‘있지만 없어야 하는 존재’라는 역설이 가장 어렵습니다. 구도와 동선을 신경 써야 하지만 동시에 티가 나면 안 되니까요. 반면 무대는 한정된 공간을 어떻게 채우고, 객석과 공감하게 만드느냐가 중요합니다. 관객의 호흡이 즉각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더 민감하고도 매력적이죠.

[배우 안창복, 사진 = 김현승]
[배우 안창복, 사진 = 김현승]

Q. 실제 자신과 닮은 배역을 맡아본 적이 있나요?

A. 아직은 없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배역에 대해 더 질문하고, 거리를 좁히는 과정을 즐깁니다. 앞으로는 변호사·의사·군인·경찰처럼 책임과 무게가 있는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습니다.

Q. 가장 도전적이었던 배역은 무엇인가요?

A. 작년 여름 <21세기 6.25>라는 단편 작품에서 할아버지 역할을 맡았습니다. 겉모습만 젊을 뿐, 속내는 6.25 전쟁의 트라우마에 빠져있는 인물이었는데, 전쟁 경험도 노년의 감각도 전혀 체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 공백을 조사와 상상으로 채우다 보니 그 과정 자체가 저에겐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21세기 6.25' 스틸 컷, 사진 = 씨엠닉스]
['21세기 6.25' 스틸 컷, 사진 = 씨엠닉스]

Q. 배역 몰입을 위해 특별히 지키는 루틴이 있나요?

A. 특별한 의식은 없습니다. 대신 생활 패턴을 일정하게 유지하려 합니다. 그래야 연기가 잘 안 풀릴 때, 그게 컨디션 문제인지 역량 문제인지 구분할 수 있거든요.

작품마다 ‘종이 한 장’ 정도의 생각 변화를 쌓아가는 걸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또 책과 소설을 통해 간접 경험을 넓히며, 그런 경험들을 연기에 차곡차곡 녹여내려고 합니다.

Q. 영향을 받은 배우나 작품이 있다면요?

A. 특정한 누군가를 우상화하는 편은 아니지만, 박희순 배우의 결이 저와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또 〈광해〉에서 이병헌 배우의 연기는 정말 인상 깊었어요. 천민과 왕을 오가며 설득력을 구축하고, 화장실 장면 같은 유머로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힘이 대단했습니다.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도 기억에 남습니다. 지하철 첫 살해 이후 점점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강렬했어요. 고민의 흔적이 촘촘히 보였죠. 긴 호흡을 설득력 있게 끌어낼 수 있어야 짧은 호흡도 따라온다는 걸 다시 깨달았습니다.

[배우 안창복, 사진 = 김현승]
[배우 안창복, 사진 = 김현승]

Q. OTT 시대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A. 배우 입장에서 형식의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들진 않습니다. 다만 작품이 많아질수록 희소성이 희석되는 건 우려돼요. 이 과도기가 지나면 결국 글로벌 기준으로 작품 자체가 온전히 평가될 거라 생각합니다.

Q. 배우로서의 목표와 버킷리스트는 무엇인가요?

A. 제가 버킷리스트가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장르 구분 없이, 무대든 스크린이든 TV든 어디서든 감동과 공감을 전하고 싶습니다. 조승우 배우처럼요. 어디서든 관객과 만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배우, 그게 제 목표이자 버킷리스트입니다.

['죽어서 보니' 촬영 현장, 사진 = 배우 안창복 인스타그램]
['죽어서 보니' 촬영 현장, 사진 = 배우 안창복 인스타그램]

배우 안창복은 매일 자신의 호흡과 일상적인 생활을 다듬는다. 무대든 카메라든, 장르의 경계를 넘어 결국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배우가 되겠다는 그의 목표는 단순하지만 분명하다. 앞으로 그가 쌓아갈 ‘종이 한 장’의 변화들이 어떤 무게를 만들어낼지 기대해본다. [편집장 김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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