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와 학생의 관계에 대하여

교육자의 역할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유는 한 가지에요.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토니 케이 감독의 영화 <디태치먼트> 의 인트로에서 교사인 애드리언 브로디 (헨리 役) 가 읊조리던 대사다. 여전히 많은 교사들이 이렇게 믿고 있을까.

[디태치먼트 스틸 컷, 사진 = 프레인글로벌]

학교를 흔히들 작은 사회라 명칭한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만은 학생과 교사는 가족과 친구 다음으로 가까운 관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저 지식의 가르침만을 교육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커가면서 알게 된 사실은, 교육자는 생각보다도 책임감이 더 강한 직업이라는 것이다. 

교육자의 역할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한때 교사를, 어쩌면 여전히 교사를 꿈꾸는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깊은 질문이라 쉽게 정답을 내릴 수 없다. 교육자는 학생을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단순하게 생각해 보기로 한다. 어떻게 보면, 교사와 학생의 관계도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다. 그렇다. 그들에게는 그저 좋은 어른이 필요했던 것이다. 

[디태치먼트 스틸 컷, 사진 = 프레인글로벌]
[디태치먼트 스틸 컷, 사진 = 프레인글로벌]

어디로 가야 할지 아직 모르는 학생들에게 지도를 건네주고 위험 지역을 표시해주는 것, 같이 걸어가다가 때가 되면 혼자 걸어갈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것. 연필을 잡은 학생들이 편찬하기 시작한 책의 편집자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독자가 되어주는 것, 혼자 쓸 수 있는 때가 되면 서문을 써주며 독려해주는 것.

교육자는 학생을 평생 책임져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다니고 있는 학교 생활이 끝나면 그들의 역할이 완전히 소멸되는 것 또한 아니다. 교사는 학생이 그들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떤 연유 하나만으로도 학생들의 기억에 남을만한 좋은 어른으로 남는다면. 그 기억 하나만으로 그들이 삶을 바꿀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면.

[죽은 시인의 사회 스틸 컷, 사진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디스테이션]

영화 속 좋은 어른들의 모습

피터 위어 감독의 <죽은 시인의 사회> 속 로빈 윌리엄스 (키팅 선생님 役) 는 학생들이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기를 바랐던 교사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현재를 살아가라는 Carpe Diem, 그는 공부보다도 더 중요한 인생을 알려주었다.

명장면이라 불리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마지막 장면은 자신들에게 인생을 가르쳐준 진정한 교사였던 키팅 선생님을 위해서 에단 호크 (토드 役) 가 책상 위로 올라가 소리치는 장면이다. “Oh Captain, My Captain.” 학생들은 그를 따라 책상 위로 올라가 키팅 선생님의 마지막을 함께 배웅한다. 키팅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시로써 다가갔다. 나 또한 낭만을 가득 담아 적어 내려갈 시들이 선생님을 향한 최선의 보답이라는 마음을 간직하며 가끔 시를 써내려간다.

[바튼 아카데미 스틸 컷, 사진 = 유니버설 픽쳐스]
[바튼 아카데미 스틸 컷, 사진 = 유니버설 픽쳐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영화 <바튼 아카데미> 속 폴 지아마티 (폴 허넘 役) 는 외로움을 안고 있던 학생 도미닉 세사 (앵거스 털리 役) 의 겨울을 함께한다. 앵거스는 모종의 이유로 방학식이 끝난 후에도 학교에 머무르게 된다. 방학 동안 그는 규율을 중요시 여겼던 폴 허넘 선생님과 함께 생활을 하게 되는데, 자유를 중요시했던 앵거스에게는 쉽지 않은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알아가고, 마침내 폴 허넘은 앵거스가 감추고 있던 상처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폴 허넘의 틀이 깨진 인상 깊은 장면 하나가 떠오른다. 식당에서 체리 쥬빌레를 먹고 싶었던 앵거스였지만, 식당에서는 규정상 술을 마실 수 없게 하였다. 식당의 규정에 반발하며, 그들은 아이스크림과 체리만을 포장해서 나오게 된다. 그리고 폴 허넘이 좋아하는 짐빔을 그 위에 뿌려, 주차장에서 앵거스만을 위한 체리 쥬빌레를 만들어준다. 고지식했던 그가 건넨 체리 쥬빌레식 위로가 아니었을까.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 <굿 윌 헌팅> 속 로빈 윌리엄스 (숀 맥과이어 役) 의 위로는 학생 하나의 삶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모두 자신의 잘못인 것 같다는 맷 데이먼 (윌 헌팅 役) 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숀. 굳세 보이려고 했던 그도 결국 어린 아이였음을, 펑펑 우는 윌의 모습이 말해준다. 숀의 한마디로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게 된 윌은 20년의 긴 겨울 끝에 봄을 맞이하게 된다. 

[디태치먼트 스틸 컷, 사진 = 프레인글로벌]
[디태치먼트 스틸 컷, 사진 = 프레인글로벌]

이상과 현실, 그럼에도 기적을 꿈꾸며

영화니까 희망적인 결말을 맞이하겠지, 라고 말하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좋은 어른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만났더라도 선택은 학생의 몫이기에 올바른 길을 걸어가지 못하는 학생들의 경우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토니 케이 감독의 영화 <디태치먼트>는 교권이 붕괴된 현실 속 교사의 무력함을 직시하게 한다. 애드리언 브로디 (헨리 役) 는 상처받은 두 소녀를 도우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책임질 수는 없다는 한계를 절감한다. 그는 그들의 모든 것, 앞으로의 인생까지 책임져줄 수 없다는 결론을 맞이한다. (물론 영화 속에서 헨리는 자신이 포기했던 에리카를 다시 찾아가는, 조금은 희망적인 결말을 맞이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굿 윌 헌팅 스틸 컷, 사진 = 영화사 오원]
[굿 윌 헌팅 스틸 컷, 사진 = 영화사 오원]

그럼에도 나는 기적을 꿈꾼다. 기적은 특별하지 않다. 학생들의 평범한 삶을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헨리가 학생들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그저 평범한 행복이었을 것이다. 학생이 학생의 나이에 누릴 수 있는 평범함 말이다. 어쩌면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있는 학생들은 그 어른 한 명을 찾고 싶어 그토록 방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위에도 언급했지만, 교사가 학생들에게 지도를 쥐어주더라도, 결국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학생의 몫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토드가 그 이후에도 시를 계속 써 내려갔을지, <바튼 아카데미> 속 앵거스가 성실하게 학교를 다녔을지, <굿 윌 헌팅> 속 윌의 새로운 도전이 언제까지 이어졌을지. 그들의 미래를 우리는 감히 예측할 수 없다. 선택은 그들의 몫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올바를 방향을 택하여 미래의 어느 순간을 살아가고 있을 때, 문득 그 교사가 나의 삶에서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이었음을 떠올리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디태치먼트 스틸 컷, 사진 = 프레인글로벌]
[디태치먼트 스틸 컷, 사진 = 프레인글로벌]

인간다움이 점점 흐려지는 시대, 교사는 학생에게 인간 대 인간으로 다가가야 할 마지막 어른일지 모른다. 나는 바란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올바른 방향을 말해주고,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영화가 아닌 현실 속에서도 영화 같은 순간이 자주 펼쳐지기를. [객원 에디터 조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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