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턴스'의 명과 암, 의의에 대하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영화 <디스턴스>는, 그의 주요작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에 정식 개봉되지 않은 작품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OTT/IPTV는 물론이고, 제대로 된 DVD도 없으며, 한국영상자료원에서조차 볼 수가 없는 작품이다. 물론 일본판이나 해외판 DVD 및 블루레이는 존재한다. 다만 한국어 정식 자막은 없다. 애초에 한국에 수입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디스턴스>는 유달리 한국에서 왜 이런 홀대를 당하는 것일까. 더군다나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일본 영화감독'이라면 몇 손가락에 꼽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초기작이자 세 번째 작품인데 말이다. 그러한 이유에는 극적 매력을 느끼기 힘든 고레에다 초기작 특유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건조한 작품 스타일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디스턴스>에는 전작 <원더풀 라이프>에 존재했던 '삶과 죽음'이라는 보편성이 이 작품에는 상대적으로 흐릿하기 때문이다.

[디스턴스 스틸 컷, 사진 =  디스턴스 제작위원회]
[디스턴스 스틸 컷, 사진 =  디스턴스 제작위원회]

영화는 1995년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을 일으킨 옴진리교를 모티브 삼아, 그 사건의 가해자들이 자살한 호수를 배경으로 남겨진 가족들의 내면과 거리감을 따라간다. 이미 이러한 설정에서부터 수많은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디스턴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작들처럼 상실감을 주제로 더 건조하고 차갑게 담아낸다. 하지만 이 영화는 거의 자연광으로 촬영되었고, 그 때문인지 자연광 위주의 촬영은 영화의 건조한 정서를 강화하는 동시에, 인물의 내면을 직조하는 여백으로 작용한다. 또한 움직임이 없고 고정적인 샷들이 많았던 <원더풀 라이프>와 달리 이 작품은 내내 핸드헬드로 덜덜 떨리며 움직이는 카메라를 통해 이야기를 마주해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 영화의 주된 혹평의 원인들이다.

[디스턴스 스틸 컷, 사진 =  디스턴스 제작위원회]
[디스턴스 스틸 컷, 사진 =  디스턴스 제작위원회]

하지만, <디스턴스>는 외면받는 범작으로 취급당하기엔 분명히 아쉬운 작품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책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에도 나오듯이 이 영화는 배역, 설정을 제외하고 제대로 된 각본 없이 실험적으로 진행되었다. 그 덕에 애드리브에 의존한 대사들은 일반적인 대사들과 달리 여백이 길고 많으며, 이는 작품의 주제의식이자 제목 그 자체인 '거리감'을 표현하는 데에 적합했다고 본다.

또한, <디스턴스>가 가지는 의의는 설정 그 자체다. 가해자의 가족을 다룬 이 영화는 회색지대를 다루는 영화다. 테러를 행하고 자살한 가해자들의 가족들은 자신들이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묘한 의식을 자연스레 가지게 된다. 테러 가해자들의 가족들은 억지로 묵게 된 가해자들의 아지트 안에서, 가해자들이 살아있었을 때 함께한 순간들을 회상 (플래시백) 하면서 가족이자 가해자인 그들을 향한 마음을 정리하게 된다.

[디스턴스 스틸 컷, 사진 =  디스턴스 제작위원회]
[디스턴스 스틸 컷, 사진 =  디스턴스 제작위원회]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디스턴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2023년 영화 <괴물>과 유사한 상징물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디스턴스>와 <괴물>에서의 주요 상징물은 '물'과 '불'이다. <괴물>에서의 '물'과 '불'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징이다. <괴물>에서는 이 두 요소가 ‘진실을 향한 길’과 ‘진실을 가리는 장애’로 명확히 대립하지만, <디스턴스>에서는 두 요소 모두 상실을 ‘지우는 도구’로 기능한다. 그 차이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마지막 시퀀스에서, 물과 불의 이미지가 겹쳐질 때다. 물로 씻어내든, 불로 태우든, 상실감을 유발하는 무언가를 이제는 지우거나 파괴할 수 있다는 연출 의도로 보인다.

<디스턴스>는 다큐멘터리의 건조함을 뒤집어쓴 극영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 서사에서의 극영화적 장치를 무시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것이 작중 명확히 설명되지 않고 맥거핀처럼 복선이 회수되지 않아, 혹자에게는 시각적으로 난해하다는 평과 함께, 서사적 작위성에 대한 불편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어찌 보면 안일하고 쉬운 선택인 셈이다.

[디스턴스 스틸 컷, 사진 =  디스턴스 제작위원회]
[디스턴스 스틸 컷, 사진 =  디스턴스 제작위원회]

<디스턴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명과 암이 뚜렷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이 영화에 대한 인지도가 처참한 것은 매우 아쉬울 따름이다. 결코 이렇게 쉽게 외면받을 작품은 아니다. 202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각종 사건사고들 속 흔히 볼 수 있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명확히 이분화하는 경향 속에서, 그 중간 지점에 있는 가족들은 여전히 말할 수 없는 존재로 남는다. <디스턴스>는 바로 그 회색지대를 응시하며, 용서와 기억, 그리고 부재 속 연대를 다시 질문하는 작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디스턴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관에 흥미를 가진 사람이라면 꼭 감상해볼 만한 작품이다. [에디터 김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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