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와 공포의 경계를 넘나드는 필리핀 실화 영화

2023년 12월 25일 개봉한 타갈로그 영화 <말리아리>는 관객들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로드릭 카바리도의 섬세한 연출과 피올로 파스쿠알의 뛰어난 연기가 어우러져 한 편의 역사적 판타지 스릴러를 완성했다.

영화 <말리아리>는 1800년대 필리핀 산 니콜라스, 팜팡가 지역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피올로 파스쿠알이 연기한 조나단 말리아리는 자신의 조상이 머물던 집을 조사하다가, 꿈속에서 귀신들을 목격하게 된다. 그는 꿈을 통해 과거의 사건들과 연결되며, 유체이탈을 통해 살인마 신부로 알려진 자신의 조상을 막으려는 사투를 벌인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가문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 비밀이 자신의 운명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말리아리 스틸 컷]
[말리아리 스틸 컷]

영화는 19세기의 필리핀을 배경으로 한 실화에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특히, 귀신이 등장하는 장면은 공포 영화 <이블 데드>를 연상시키는 디테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VFX를 활용한 괴물 등장 장면은 다소 조잡하게 느껴졌다. 이는 영화의 긴장감을 해치고 장르적 일관성을 깨뜨리기까지 했다.

로드릭 카바리도 감독은 초반부터 중반까지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조나단 말리아리의 유체이탈 장면은 시각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피올로 파스쿠알은 조나단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내며, 관객을 그의 여정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괴물이 등장한 이후로 영화는 긴장감이 급격히 떨어지며 혼란스러운 전개를 보인다.

[말리아리 스틸 컷]
[말리아리 스틸 컷]

<말리아리>는 공포와 판타지를 혼합한 독특한 시도를 한 작품이다. 초반의 긴장감과 배우들의 연기는 인상적이지만, 후반부의 전개와 VFX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딩 크레딧의 음악만큼은 매우 매력적이었다. 만약 공포 영화를 잘 감상하지 못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는 비교적 가벼운 입문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감독 윤성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