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과 아련함을 한껏 담은 작품.
과거 일본은 화려했다. 문명의 전파 경로 맨 끝자락에 위치한 덕분에 한반도를 통해 전래된 철기, 벼농사 등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이를 바탕으로 키워낸 문명을 전국시대의 내전으로 담금질한 뒤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의 사회를 경색되게 만든 임진년의 난을 통해 존재감을 알렸다. 흑선의 추억을 통해 이루어진 개항으로 동아시아 삼국 중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을 이룬 일본은 이후 리틀보이와 팻맨이란 브레이크가 도착할 때까지 제국이란 이름의 폭주 기관차를 멈추지 못해 동아시아를 아니 전 세계를 다시 한번 임진년의 불화 속에 내던진다. 그래서였을까? 일본에서 만들어진 작품을 보면 화려했던 지난 날에 집착하는 미련 때문인지 유독 과거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간직한 작품이 많은 것 같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작품들 중 상당수의 캐릭터들은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자신의 과거를 그리워한다. 평범한 학창시절을 혹은 평화로운 일상을 지닌 존재가 불의의 사고로나 예측할 수 없는 사건으로 상실된 뒤 그리움과 무거운 추억을 간직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작품들. 이런 말만 해도 머리 속에서 수많은 작품들이 스쳐 지나간다. 혹자들은 이것을 지진 등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의 특성 상 불의의 사고로 잃어야 했던 일상을 그리워하는 정서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이 이야기 또한 그럴듯하다.
오늘 언급할 작품 <지금, 만나러 갑니다> 또한 앞서 말한 그리움, 아련함을 한껏 담은 작품이다. 평화로운 일상, 빗물 사이로 비춰지는 햇살 가득 머금은 영상 속에서 아스라히 펼쳐지는 사랑. 세밀한 원작의 감성을 섬세한 연출로 담아낸 판타지 멜로 영화이다. 작품에 담긴 아름다운 이야기는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한국에서도 리메이크 됐을 만큼 인기도 높다. ‘영화는 판타지다’라던 말했던 누군가의 말처럼 한번쯤은 나에게 일어났으면 하는 혹은 내가 사는 지금 이 세상 어디에선 가는 꼭 있었으면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라서 지금까지도 일본을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후 일본 영화는 비슷한 소재의 비슷한 이야기를 비슷한 설정으로 끊임없이 자가복제 해낸다. 앞서 말한 영화는 판타지란 명제 만큼이나 절대적인 ‘산업은 돈이다’라는 현실적인 목표를 위해 실패 가능성이 적은 공식에 맞춰 계속 증식해 간다. 무더운 여름날, 교복을 입고 방과 후 활동을 하는 학생들, 급작스러운 사고, 재난, 이별, 타임슬립, 아련함…… 이런 소재들은 영화를 넘어서 이후 피규어, 굿즈 등 관련 상품 출시로 보다 많은 이익을 거둘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넘어가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그 이전에 오늘날의 명장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구로자와 아키라 같은 명감독들과 지금도 탄탄한 실력을 갖춘 극단 출신의 배우들이 영화로 진출해 명작들을 만들어가던 영광의 시절도 있었으나 도호 등으로 대표되는 일부 거대 배급사의 독점으로 인해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식에서 벗어난 작품들은 살아남을 수 없는 생태계 파괴가 벌어져 앞으로 일본 영화는 지난날의 영광스러운 시절을 다시 맞이할 수 있을까 싶은 의구심이 든다. 이는 우리나라 또한 일본처럼 일부 대형 배급사의 독점 현상이 계속 된다면 우리도 그들처럼 다양성이 죽어버린 영화 생태계가 만들어져 몰락의 길로 향할 수 밖에 없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또한 갖게 한다.
지금도 일본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같은 명감독이 존재하지만 오히려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이유로 바로 다음해 칸에서 같은 상을 받은 <기생충>이 한국에서 받았던 찬사와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여주기도 했다. 실사화의 망령이란 애칭으로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만화 원작 영화들이 일본 아카데미에서 감독상과 작품상들을 받고 있는 게 지금의 일본 영화계의 현실이다. 한때는 일본 가요 차트의 상위권 대부분이 실제 가수의 곡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의 OST가 점령하고 있는 것도 일그러진 일본 문화계가 갖는 큰 특징이라 볼 수 있다.
예술도 기술도 문화도 그리고 물도 고이면 썩기 마련이다. 부디 우리나라의 영화계는 흔히 말하는 갈라파고스화 되어 세계 속의 변화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자신들의 방식만 고집하면서 무너져가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영화든 음악이든 어느 문화든 다양하고 실험적인 도전과 다채로운 색깔을 가진 다양한 작품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오늘도 현장에서 뛰고 있는 모든 분들이 끊임없이 실패하고 실험해 보길 바란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야 작게는 나의 크게는 우리나라의 문화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까. 오늘도 일선에서 땀 흘리고 있는 모든 작가, 감독, 스텝, 배우들을 응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는 별이 되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린 다케우치 유코의 명복을 빈다. 언제나 그랬듯 하늘에서도 우리에게 보여준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이제는 그녀가 평안을 찾았 길 바라본다. [ 영화배우 유현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