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얼굴

[겟 아웃 스틸 컷, 사진 = 유니버설 픽쳐스]​
[겟 아웃 스틸 컷, 사진 = 유니버설 픽쳐스]​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그리고 그 두려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조던 필 감독의 〈겟 아웃(Get Out, 2017)〉은 공포영화의 장르적 틀을 넘어, 인간이 경험하는 두려움의 본질과 사회적 맥락을 드러낸다. 낯선 공간에서의 불안, 친절로 가장된 위협, 정체성이 지워질지도 모른다는 존재론적 공포까지 영화는 두려움을 다층적으로 풀어내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겟 아웃 스틸 컷, 사진 = 유니버설 픽쳐스]​
[겟 아웃 스틸 컷, 사진 = 유니버설 픽쳐스]​

두려움의 심리학

두려움은 위협을 감지했을 때 나타나는 본능적이고 즉각적인 정서 반응이다. 뇌의 편도체가 자극을 감지하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어 심장이 빨라지고, 호흡이 거칠어지며, 몸은 즉각적으로 ‘투쟁-도피 반응(fight-or-flight response)’을 준비한다.

심리학자 폴 에크만(Paul Ekman)은 두려움을 여섯 가지 기본 감정 중 하나로 분류하며, 이를 ‘생존을 위한 경보 시스템’이라 불렀다. 공포(fear)는 구체적 위협에 대한 반응이고, 불안(anxiety)은 막연한 위험 가능성에 대한 정서다.

그러나 인간에게 두려움은 단순한 생존 본능을 넘어선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두려움은 소속되지 못할 불안, 타자화로 인한 배제, 정체성 상실의 공포와도 연결된다. 〈겟 아웃〉이 보여주는 두려움은 바로 이런 사회적이고 존재론적인 차원이다.

[겟 아웃 스틸 컷, 사진 = 유니버설 픽쳐스]​
[겟 아웃 스틸 컷, 사진 = 유니버설 픽쳐스]​

낯선 친절, 위장된 안전

주인공 크리스는 백인 여자 친구의 부모 집을 방문하면서 따뜻한 환대를 받지만, 곧 설명하기 힘든 미묘한 불안과 불편함을 느낀다. 그들의 과도한 친절은 오히려 그가 경계선 위에 놓인 타자임을 드러낸다.

겉으로는 평화롭고 안전해 보이는 저택이 사실은 위협이 도사리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두려움은 더욱 증폭된다. 환대의 얼굴 뒤에 숨어 있는 위협과 위장된 안전이야말로 영화가 보여주는 서늘한 공포의 시작이다.

[겟 아웃 스틸 컷, 사진 = 유니버설 픽쳐스]​
[겟 아웃 스틸 컷, 사진 = 유니버설 픽쳐스]​

‘썬큰 플레이스(Sunken Place)’와 무력화의 심리

영화 속 가장 섬뜩한 순간은 크리스가 최면에 걸려 ‘썬큰 플레이스(Sunken Place)’에 빠지는 장면이다. 이곳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의식은 남아 있지만 주체성을 행사할 수 없는 무의식적 침잠의 세계다. 그는 눈앞의 현실을 볼 수 있지만 몸은 움직일 수 없고, 목소리조차 낼 수 없다.

“내가 더 이상 나로 존재할 수 없다”는 감각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두려움이다. 이 장면은 자율성과 주체성이 박탈된 상태, 곧 한 인간이 철저히 무력화되는 경험을 상징한다. 반복적 설명을 최소화하면서도, 영화가 보여주는 ‘존재의 무력화’가 얼마나 근본적인 공포인지 선명히 드러난다.

[겟 아웃 스틸 컷, 사진 = 유니버설 픽쳐스]​
[겟 아웃 스틸 컷, 사진 = 유니버설 픽쳐스]​

타자화와 사회적 두려움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 가운데 하나를 ‘소속되지 못하는 것’이라 말했다. 크리스가 느끼는 두려움은 단순한 개인적 공포가 아니라, 타자화(Othering)로 인한 배제 경험에서 비롯된다.

그는 연인의 가족이라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도 끝내 ‘외부인’으로 머문다. 그의 몸과 정체성은 백인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으로 대상화되고, 결국 존재가 지워질 위기에 놓인다.

〈겟 아웃〉이 보여주는 두려움은 괴물이나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권력 구조가 만든 권력과 배제와 지배의 현실이다. 이 때문에 영화의 공포는 더욱 서늘하고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겟 아웃 스틸 컷, 사진 = 유니버설 픽쳐스]​
[겟 아웃 스틸 컷, 사진 = 유니버설 픽쳐스]​

심미안의 시선

조던 필 감독의 〈겟 아웃〉이 보여주는 두려움은 공포영화의 장르적 틀을 넘어, 인간이 경험하는 두려움의 본질과 사회적 맥락을 드러낸다. 낯선 공간에서 느끼는 불안, 친절로 가장된 위협, 그리고 정체성이 지워질지도 모른다는 존재론적 공포까지 영화는 두려움을 다층적으로 풀어내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겉으로는 다정하고 환영하는 태도 속에서 점차 드러나는 기묘한 불안과 위협은 주인공 크리스를 옥죄어 간다. 영화가 보여주는 두려움은 단순한 개인의 감정을 넘어, 구조적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더욱 서늘하다.

영화는 묻는다.

“나는 정말 나로서 안전한가?”

“환대의 얼굴 뒤에는 어떤 위협이 숨어 있는가?”

이 질문은 단지 크리스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겟 아웃 스틸 컷, 사진 = 유니버설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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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차 예고

두려움은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선택과 변화를 요구한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인식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다.

다음 회차에서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1989)〉를 통해, 억압적 체제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두려움 속에서 어떻게 우리는 용기를 선택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려 한다. [영화 심리 칼럼니스트 ‘심미안 연구소’ 석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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