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릴은 그날 저녁 바비큐 파티를 즐길 것이다, '자전거 탄 소년'

2025-11-21     라파엘
['자전거 탄 소년' 스틸 컷, 사진 = 영화사 진진, 티캐스트]

소년이 왜 버려졌는지에 대해 앞뒤 설명 없이 영화가 시작된다. 소년 시릴이 전화기 너머 애타게 찾는 대상은 아버지다. 보육원 직원의 만류에도 시릴은 집요하게 수화기를 붙잡는다. 11살 소년에게 영문 모를 아버지와의 단절은 이해되지도 않고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시릴의 무모하고 맹렬한 기세를 꺾은 건 수화기에서 들리는 목소리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아빠는 떠나셨대. 받아들여”

“자전거는 어쩌고요?”

['자전거 탄 소년' 스틸 컷, 사진 = 영화사 진진, 티캐스트]

아버지와의 연락이 끊기고 자전거도 잃어버렸다. 이제 아버지와 살면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소년의 세계는 붕괴되었다. 소년은 무너진 세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소년 시릴의 탈출, 폭력성, 집착으로 이어지는 격렬한 행동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버려짐’을 견디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다.

현실을 부정하며 비뚤어져 가고 있는 시릴을 찾아온 사만다. 그녀는 시릴이 보육원 직원들에게 붙잡히지 않으려고 붙들고 늘어졌던 사람이다. 시릴은 잡히지 않기 위해 우연히 눈앞의 어른을 붙잡았지만 사만다는 그 순간부터 시릴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녀는 자전거를 되찾아주고, 아버지와의 만남도 주선한다. 이는 행동의 이유가 아니라 행동 자체가 중요하다는 다르덴 형제의 일관된 미학에 해당한다.

“아빠 만날 생각 마. 거기서 아줌마랑 잘 살아”

“전화 안 할 거야?”

“몰라”...“안 할 거야”

['자전거 탄 소년' 스틸 컷, 사진 = 영화사 진진, 티캐스트]

소년의 아버지는 자전거를 팔았고 소년을 버렸다. 그는 자신의 인생조차 감당하기 버거워 보인다. 나는 어떻게든 살아볼 테니 너는 좋은 아줌마가 나타났으니 잘 살아달란 투다. 소년 시릴의 아버지와의 만남은 추방의 서사다.

사실 부모와 자식에게 이별은 예정되어 있다. 그것이 어떤 형식적인 절차를 거칠지 또 언제 그 고통의 시간을 맞게 될 지가 정해져 있지 않을 뿐이다. 시릴은 단지 어린 나이에 그 현실을 맞닥뜨린 것이다.

['자전거 탄 소년' 스틸 컷, 사진 = 영화사 진진, 티캐스트]

아버지의 자식 유기는 역사적으로 낯선 일이 아니다. 창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인류 최초의 인간 아담 역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낙원 밖으로 내던져진’ 존재다. 그는 세계의 구조를 설명받지 못했고, 왜 버려졌는지에 대한 답도 듣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담 이후의 인간은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버려짐’의 조건 아래 태어난 셈이다. 그렇다면 영화 속 사만다는 이브의 역할에 더 가깝다. 아담이 낙원 밖에서 이브와 함께 삶을 다시 꾸려 나갔듯, 시릴 역시 아버지로부터 떨어져 나온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가능성에 도달한다.

세상이 가혹하고 모질더라도 아버지에게 버림받는 것 이상 모질까? 가혹하게 내쳐진 것은 오히려 시릴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그렇게 다시 일어선 순간부터 시릴은 더 이상 누군가의 보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로 변모한다. 누가 뒤에서 자전거를 붙잡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균형을 잡고 힘껏 페달을 밟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전거 탄 소년' 스틸 컷, 사진 = 영화사 진진, 티캐스트]

창세기에서 뱀이 아담을 유혹했듯이 영화에서는 웨스라는 거리의 불량배가 시릴을 유혹한다. 웨스는 시릴에게 일탈과 죄의 세계를 제시한다.

그 세계로 발을 들이는 순간, 소년은 편의점 강도를 저지르고 더 깊은 상처의 그물에 갇힌다. 그러나 사만다는 그를 다시 붙잡는다. 그녀는 시릴을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그의 손을 잡고 경찰서에 가서 배상을 약속하며 함께 책임을 진다.

['자전거 탄 소년' 스틸 컷, 사진 = 영화사 진진, 티캐스트]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현실의 재구성이다. 다르덴 형제 감독은 이 영화가 영화가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마치 영화의 스토리가 이 세상 어딘가에서 실제 일어난 일이고 카메라는 단순히 그 현장을 포착한 것처럼 느껴지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생활의 한 편린을 뚝 가져왔는데 그 안에는 버려짐, 유혹, 일탈, 구원, 부활 등이 뒤섞여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 모든 서사를 정교하게 수렴한다. 편의점 주인의 아들이 던진 돌에 맞아 나무에서 떨어진 시릴은 상징적으로 ‘죽음에 가까운 상태’를 통과한다. 그러나 그는 몸을 일으키고 떨어진 숯 봉지를 들고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자전거 탄 소년' 스틸 컷, 사진 = 영화사 진진, 티캐스트]

그 모습은 파괴와 상처를 통과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존재의 초상이며, 헤르만 헤세가 말한 “알을 깨고 나오는 새의 첫 비행”에 가깝다. 세계는 그를 쓰러뜨렸지만, 시릴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태어난다.

다르덴 형제는 이 영화를 “가장 낙관적인 영화”, “빛의 영화”라고 부른 바 있다. 그 빛은 희망을 약속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상처를 품은 채 미약하더라도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의지에서 나온다. 시릴 이 다시 자전거를 타고 숲속에서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은 구원이 기적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행위’임을 보여준다.

['자전거 탄 소년' 스틸 컷, 사진 = 영화사 진진, 티캐스트]

그날 저녁 시릴은 과연 바비큐 파티를 즐겼을까. 영화는 끝내 말하지 않지만, 자전거 페달을 밟는 소년의 뒷모습은 본 누구든 그날 저녁 시릴이 맛있는 바비큐 파티를 즐기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객원 에디터 라파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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