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내일의 진실이 뜰 텐데, '굿뉴스'
“진실은 간혹 달의 뒷면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앞면이 거짓은 아니다.” 변성현 감독의 <굿뉴스>는 허구의 인물 트루먼 셰이디의 이 명언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영화 속 누구나 알다시피, 트루먼 셰이디는 변성현이 창조한 가짜 인물, 그리고 또 한 번 그가 만들어낸 가짜 인물 ‘아무개’(설경구)의 상상 속 존재다.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 소개하는 남자가 만든, “아무것도 아닌 남자”인 셈이다. 메인 랩컨 관제사로 임명된 이례적인 한국인 고명(홍경)은 진실보다 보이는 것을 믿는 사회 속에서 약삭빠른 생존의 방식을 터득한 인물이다. “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간에 사람은 눈에 보이는 걸 믿고, 믿으면 더 이상 구라가 아니다. 저 뉴스처럼.” 그의 격분을 아무개는 특유의 냉소로 받아넘긴다. “앞면이든 뒷면이든 달은 달이지.”
같은 문장을 두고도 두 사람의 해석은 갈라진다. 고명은 ‘앞면’과 ‘뒷면’의 대비에 주목하지만, 아무개는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 방점을 찍는다. 결국 이들의 대립은 ‘진실’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다. 고명은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려 하고, 아무개는 그것이 결국 하나임을 말한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무엇이 보이고, 무엇이 감춰지는가’라는 인식의 문제를 드러낸다.
정도가 서로 다르다 뿐 현상에 ‘나만의’ 질서를 부여하지 않는 인간은 적어도 지구상엔 없다 말해도 좋을 것이다. 대부분의 음모론도 거기서 출발한다. 그런데 <굿뉴스>에는 반례가 한 명 있다. 상황을 ‘내’ 질서로 매듭짓는 일엔 도무지 흥미가 없는 아무개다. 그는 제아무리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랄지라도 단순하고 명료하게, 그것도 구태의연한 모습으로 정리정돈함에 능숙하다. 말의 속뜻을 투시해 ‘명분’을 통찰하는 능력은 특히 놀랍다. 아무개가 그런 통찰력을 십분 발휘하는 때는 안될 것도 되게 꾸며야 하는 경우다. 높으신 분들이 뭘 하고 어쩌든 아무개에겐 명분들만 무의미하게 오가는 그저 구경거리고, 그의 목적지는 몇 가지 진실을 선택적으로 모아 새로운 진실을 필요에 맞게 잘 재조합해 내는 데 있다. 그래서 의외로 이 영화의 본질이 발견되는 대목은, 명언에 대한 고명과 아무개의 설전이라기보다 그 뒤에 이어지는 육담이다.
“달밤에 무슨 헛소리야. 앞면이든 뒷면이든 달은 달이라고.” “아저씨야말로 대체 뭔 개소리예요!” “너 지금 나보고, 개라고 한 거야?” 아무개가 달은 달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우리와 똑같은 앞면을 보고 듣지만 그에게 곧장 읽히는 건 저절로 뒷면이기 때문이다. 달(의 앞면)이 입력되고 달(의 뒷면)이 출력된다는 거다. 뒤집어서 이해하면 아무개는 자기의 뒷면을 아예 감추거나, 앞면으로 꾸미는 화술에도 환하게 된다. 그동안 아무개가 언쟁에서 달아나는 방법은 주로 전자에 해당해서, 중앙정보부장 상현(류승범)처럼 말꼬리를 잡거나 과장스러운 액션으로 상대를 곤란하게 만든다기보단 오히려 (이를테면 ‘아무개도 개는 갠가?’라든지) 능청맞은 농담으로 뒷면을 슬쩍 침묵하는 식이었다. 그러니까 아무개가 문득 아무개답지 않도록 ‘개’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듯 보이는 건 그게 후자의 방식이라서다. 실수를 자각하고 말길 잃은 고명의 리액션에서 두 사람의 권력관계가 재각인되는 모습을 보면, 그 목적은 단지 하나 대화를 ‘먼저’ 닫기 위한 구실 혹은 계기를 마련하기 위함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엔 머리 굴리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요도호 사건을 인명 피해 없이 해결하기 위해서 다들 모인 척하지만 건설적인 대화는 사실 뒷전이고, 대외적 명분을 첫째로 간수할 목적으로 논의에 임한다. 그리고 그 머리 굴리는 소리가 이제 지겨운 두 젊은이가 있다. 고명과 일본 운수정무차관 신이치(야마다 타카유키)다. 다수결의 원칙은 어찌하여 존재하는가. 이 영화의 사회주의자들은 만장일치제를 외치고, 어떤 민주주의자는 소수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며 다수를 회유한다. 또 일전에 북한에 끌려갔다 귀향한 사람들은 차라리 죽고 싶었다 말하고, 지금 요도호 사람들은 죽기보다 북한에 끌려가는 게 낫다 말한다. 힘없는 두 젊은이는 마땅히 제 할 일을 다하고 싶은 마음뿐인데 도통 어느 장단에 놀음해야 할지 몰라 시종 곤욕을 겪는다. 명분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마술사 아무개는 그래서 지혜를 전하기로 한다. “기도 대신 행동으로.” “내가 말했잖아, 달은 달이라고. 누가 꼭 이름을 불러 줘야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꼭 알아줘야 의미가 생기는 것도 아니야. 네가 한 일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어.”
상현은 항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표를 완수하려는 인물로, 우리가 ‘보는’ 많은 것이 ‘보이는(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이게 된)’ 것에 불과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은 일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일어난 사실에 더해, 약간의 창의력과 믿으려는 (다른 사람들의) 의지까지 충족된 것만을 본다. 다수결의 원칙에서 엿볼 수 있듯, 이데올로기도 사사로운 질서를 관철하기 위함에서 출발하므로 예외가 아니다. 우린 인간이 정립한 질서가 무너진 역사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니까 각자 입장에서 명분을 읽고 쓰되, 각자 자리에서 본질을 놓치진 말자는 이야기다. 건강한 실리를 위할 때 명분을 이용하자는 말이다. <굿뉴스>의 블랙 유머는 관객에게 통렬함을 전달하기보다 헛웃음을 유발하는 식으로 작동한다. 그 이유는 <굿뉴스>를 점철하는 명분 다툼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다는 데 있다. 우린 모르지 않는다. 세상이 명분으로 추동한다는 걸 아주 잘 안다. 다만 잊어서 본질을 놓칠 때가 제법 많고 <굿뉴스>는 반면교사로써 그 점을 다시 상기시킨다. 보이지 않아도 뒤에서 마땅히 고명처럼, 갖은 명분들을 헤치고 제 일을 다하며 나아가는 사회 이미지를 역으로 제시한다. [객원 에디터 송용환]
씨네필매거진 공식 인스타그램 @cinephile_mag
https://www.instagram.com/cinephile_mag/
씨네필매거진 | Patreon: https://www.patreon.com/cw/cinephilemagazine
씨네필매거진 객원 에디터 모집: https://www.cinephile.kr/news/articleView.html?idxno=474
씨네필매거진 X 서울필름아카데미 <영화이론과정> 안내: https://www.cinephile.kr/news/articleView.html?idxno=454
씨네필매거진 X 서울필름아카데미 <영화비평입문> 안내: https://www.cinephile.kr/news/articleView.html?idxno=499
씨네필매거진 X 서울필름아카데미 수강 신청: https://forms.gle/1ioW2uqfCQGavsZs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