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페우스 신화의 변주, '도애의 시간'

2025-11-05     김현승
['도애의 시간' 스틸 컷, 사진 = 씨엠닉스]

<도애의 시간>은 애도를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영화다. 이 작품의 슬픔은 소리와 리듬으로 이루어진다. 탭댄스의 특유의 박자감, 메트로놈의 일정한 소리, 인물의 심리를 반영한 듯 불안하게 흔들리는 카메라의 핸드헬드 움직임, 그리고 고요한 음향 디자인까지. 영화는 감정의 격렬함 대신 그 진폭을 탭댄스이라는 물리적 움직임으로 대체한다. 그 결과, 울음은 더 이상 목소리가 아니게 된다.

지애는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탭댄스를 춘다. 발끝이 흙을 때릴 때마다, 그 리듬은 마치 통곡의 리듬처럼 들린다. 톡톡 울려 나오는 소리는 울음의 파열음을 닮았다. 그러나 그것은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감정의 변환이다. 영화는 바로 그 변환의 과정에서 애도의 본질을 찾아간다. 무너지는 대신 반복하고, 진부하게 흐느끼는 모습을 보이는 대신 이 영화는 기묘할 정도로 비어버린 음향 속에 리듬감 있는 탭댄스 소리를 채운다. 이 작품에서 슬픔은 음악이 아니라 박자감이다. 톡톡 튀는 소리를 내는 지애의 탭댄스 애도는 반복적인 움직임 속에서 비유적으로든 실제로든 도애라는 인물의 생명을 되살린다.

['도애의 시간' 스틸 컷, 사진 = 씨엠닉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의 사운드 디자인이 울음소리를 대체하는 동시에, 감정의 통로를 바꿔치기한다는 점이다. 탭댄스 연습 장면에서의 메트로놈과 같은 규칙적인 소리는 애도의 시간감을 통제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 속에서 홀린 사람처럼 부상에도 불구하고 탭댄스에 열중하는 지애의 모습은 음악적이거나 밝기보다는 일정한 템포와 자신만의 의식 속에 구속된 존재처럼 보인다. 그 안에서 탭댄스의 리듬이 점차 변형되며, 관객들을 당황하게 한 탭댄스의 애도는 울 수 없기에 춤을 추는 사람, 그 춤이야말로 애도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다.

터널 장면은 영화의 감정 구조를 결정짓는 핵심이다. 어둠 속에서 울리는 지애의 탭 소리는, 공간의 반향을 통해 마치 지하세계의 심장박동처럼 들린다. 터널은 생과 사의 경계이자, 기억과 망각의 통로다. 그곳에서 도애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죽음의 영역에 발을 들인 존재로 드러난다. 영화는 여기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사랑하는 이의 영혼을 저승에서 데려오려다, 마지막 순간에 뒤를 돌아봐 그를 잃는 오르페우스처럼, 지애 또한 도애를 터널 밖으로 데리고 나올 수 없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신화의 비극적 반복이 아니다.

['도애의 시간' 스틸 컷, 사진 = 씨엠닉스]

<도애의 시간>이 탁월한 것은 그 신화적 구조를 일정 부분 변형하는 데 있다. 이 영화에서 지애는 단순히 뒤를 돌아본 탓에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자가 아니다. 지애가 함께하고파 했던 도애는 자신의 죽음을 자각하고, 스스로의 소멸을 받아들이며 지애의 애도를 이해하는 자로 변모한다. 즉, 이 작품은 죽음을 되돌리려는 시도가 아니라, 죽음을 수용하는 이야기다. 오르페우스가 실패하는 존재라면, 도애는 수용하는 존재인 것이다.

<도애의 시간>이 남기는 죽음에 관한 감정은 비통함이 아니다. 오히려 평온에 가깝다. 지애의 춤은 아버지의 죽음을 되살리려는 주문이 아니라, 그 부재를 받아들이는 마지막 작별 인사다. 죽음을 부정하지 않는 용기와 애도를 터널이라는 텅빈 공간감과 텅빈 음향 속 탭댄스라는 음향적 연출로 표현한 섬세한 연출이 이 영화의 깊이감을 더해준다.

['도애의 시간' 스틸 컷, 사진 = 씨엠닉스]

<도애의 시간>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그리진 않는다. 대신 생사를 건너 죽음에게까지 전달되는 소리의 세계를 보여준다. 말하지 않고, 울지 않으며, 대신 탭댄스를 춘다. 마치 기도와 같은 탭댄스의 모습을 통해 제사와 같은 인류의 다양한 죽음을 애도하는 의식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 영화는 기존의 의식들을 탭댄스로 대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기이하고 비합리적으로 보여서 이해하기 어려운 지애의 탭댄스 의식 또한 이해할 만한 여지가 있다. 바로 우리 현재의 인류가 비합리적이고 기이하게 보이는 죽음을 향한 의식을 강박적으로 가지면서까지 보이는 것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 영화는 우리가 애도를 하는 이유와 방식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하는 독특한 단편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편집장 김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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