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음의 청춘을 공명하는 그들의 음악, '섬들의 집'

2025-11-03     김현승
['섬들의 집' 스틸 컷, 사진 = 씨엠닉스]

<섬들의 집>은 한 청춘의 고립을 다룬 영화다. 그러나 그것은 흔한 의미의 외로움이 아니다. 영화는 말로 규정되지 않는 감정의 층위를 음악, 공간, 그리고 ‘소리의 부재’로 형상화한다. 청춘의 외로움이 종종 관계의 단절이나 죽음의 충격으로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모든 감정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바로 그 절제와 여백이 이 작품을 돋보이게 만든다.

영화의 중심에는 작곡 전공생 지안이 있다. 지안은 졸업 공연을 앞두고 세상을 떠난 친구 하나의 방이 있는 하숙집과 남자친구와 함께 쓰는 연습실을 맴돌며 곡의 가사를 완성하지 못한 채 방황한다. 지하철 안에서 헤드폰을 쓴 지안의 모습은 세상과의 연결을 스스로 차단하는 고립의 은유로 작동한다. 소리를 듣는 행위가 곧 ‘차단’을 의미한다는 역설인 셈이다. 영화는 이를 통해 음악이 관계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고립의 장치임을 드러낸다.

['섬들의 집' 스틸 컷, 사진 = 씨엠닉스]

<섬들의 집>이 음악영화로서 가치가 높은 이유는 음악이 감정의 직접적인 통로로 쓰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노래나 연주로 감정을 폭발시키기 보다 음악을 준비하는 과정에 더 집중한다. 친구 하나의 죽음이라는 사건은 분명 영화의 중심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오히려 ‘죽음 이후의 시간’을 다루며, 인물의 부재와 함께 상실감과 외로움을 음악 작업이라는 예술 활동을 통해 치유해나간다. 지안은 상실감을 일방적으로 토로하기보다는, 그저 일상 속 음악 작업을 이어나간다. 그렇기에 관객은 죽음의 무게를 직접적으로 느끼지 않으면서도, 도리어 인물들의 내면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이는 감정의 절제이자 신파적 과잉을 경계하는 영화적 태도다.

<섬들의 집>은 결국 쉽게 사람들과 부대끼지 못하는 청년 세대에 관한 얘기다. 사람과 사람 사이, 생자와 사자 사이, 음악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청년 세대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는 그 간극을 단순한 비극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마지막 공연 시퀀스는 그 점에서 상징적이다. 지안을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의 몽타주가 지안의 음악과 함께 펼쳐지면서, 지안은 무대 위에서 홀로 서 있지만, 공연과 함께 나타나는 지안, 해옥, 남자친구인 시원의 일상을 보여주는 몽타주를 통해 관객들과 해옥, 시원, 그리고 하나의 가사가 함께 있다는 점을 부각한다. 공연이라는 행위를 통해 생사를 떠나 등장인물들 모두가 한 무대 위에서 공존하는 것이다.

['섬들의 집' 스틸 컷, 사진 = 씨엠닉스]

33분의 결코 짧지 않은 러닝타임이지만, 섬들의 집은 어렵거나 지루한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독특하게도 음악 영화임에도 지안의 고립감을 표현하기 위해서인지 대사 없이 조용한 장면들도 많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이끄는 일종의 미스터리이자 작품의 흥미를 유발하는 하나의 죽음은 단순히 장치나 감정적 트리거로 소모되지 않는다. 그 덕분에 이 작품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나 영화의 톤이 오락가락하지 않고, 일정하게 나아간다. 마지막 장면의 '섬'에 대한 은유적 메시지를 쪽지 속 글로 풀어낸 점은 다소 직접적이어서 아쉽지만, 담담한 톤을 유지한 영화의 인상적인 마무리를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다.

<섬들의 집>은 심리적 두려움을 직시하는 영화다. 혼자가 되는 법을 배우면서, 동시에 서로에게 기대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 청춘의 외로움과 상실감을 과장되지 않게 표현한 이 영화는 한 인물의 예술을 통한 정서적 성장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편집장 김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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