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에서 더 돋보이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2025-10-13     김수빈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스틸 컷, 사진 = 넷플릭스]

영화의 첫 장면이 스크린에 비치는 순간, 우리는 이 영화의 감독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평면적이고, 단순한 앵글 속 흔하지 않은 색감은 관객들의 눈과 뇌를 동시에 사로잡는다. 자신만의 미학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투영하는 감독, ‘웨스 앤더슨’. 그의 대표작으로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있다.

웨스 앤더슨의 미감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단편영화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의외일 것이다.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스틸 컷, 사진 = 넷플릭스]

그가 영화를 처음 시작한 때는 1994년 단편 ⌜바틀 로켓⌟ 으로 시작했고 2014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후에도 꾸준히 단편영화를 제작해 왔다. 그가 단편을 사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장편보다 더 자유롭게 자신의 미학을 담아 도전적인 실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편 영화를 만들면 정말 다른 경험이에요. 제작 기간이라는 거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이죠. 실행 계획이 훨씬 간단하고, 목표 지향적이죠. 가끔은 정말 제 취향인 단편 영화를 만들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재미를 위한 거죠. - 웨스 앤더슨 감독의 indiewire 인터뷰 중.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스틸 컷, 사진 = 넷플릭스]

2023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는 웨스 앤더슨이라는 감독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줄거리는 이렇다. 41세의 부유한 독신남 헨리 슈거는 돈에 대한 욕망으로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그런 그가 돈에 대한 욕심으로 도박에 쓸 속임수를 쓰기 위해 비범한 기술을 배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이야기다. 

로알드 달의 청소년 단편집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그간 여러 감독이 각색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던 난해한 텍스트였다. 웨스 앤더슨은 이를 영화적 리얼리즘이 아닌 ‘연극적 환상’으로 풀어낸다. 그는 편집으로 장면을 자르지 않고, 배우들이 무대 위를 오가듯 세트 안을 자유롭게 이동하게 한다. 카메라는 벽 너머, 세트의 뒷면까지 노출시키며 허구의 경계를 일부러 드러낸다. 그러나 그 연극성은 몰입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영화적 긴장을 끌어올린다. 관객은 무대를 바라보듯 프레임 속 배우들의 움직임과 대사를 따라가며 현실과 허구가 맞닿는 경계선에서 독특한 관점을 취하게 된다.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스틸 컷, 사진 = 넷플릭스]

그의 영화답게 화면비는 1.37:1로 설정되어 있으며, 인물은 정중앙에 배치되어 각을 맞춘 듯 반듯하다. 등장인물들은 대사 한 줄조차 생략하지 않고, 책의 문장을 그대로 읊는다. “안녕, 이라고 내가 말했다.”라는 문장을 배우가 그대로 말하는 장면은 오디오북을 시각화한 듯 낯설지만 동시에 묘하게 매혹적이다. 빠른 대사 흐름 속에서 잠시라도 집중을 놓치면 스토리를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그 리듬감이 쾌감으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앤더슨 세계에 빠져든다.

웨스 앤더슨의 작가주의적 세계는 단편영화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대중성을 좇기보다, 자신만의 세계를 밀도 있게 표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영화인에게 잊지 말아야 할 태도이자 기준이다. 그의 실험적 도전은 단편이라는 제한된 형식 안에서 더욱 과감하게 폭발한다.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스틸 컷, 사진 = 넷플릭스]

넷플릭스에 공개된 웨스 앤더슨 감독의 단편영화 모음에는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외에도 '백조'(The Swan), '쥐잡이 사내'(The Rat Catcher), '독'(Poison)까지 총 4편의 로알드 달 원작 단편을 볼 수 있다. 앞으로는 어떤 도전적인 실험을 영화로 보여줄까, 그의 다음 단편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객원 에디터 김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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