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인 여백, 미세한 움직임, 그리고 보여주기, '집으로'

2025-10-03     지경환
['집으로' 스틸 컷,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해서 처음으로 관람한 작품이다. 차이밍량 감독의 영화 〈집으로〉. 베니스 영화제 비경쟁 출품작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측에서는 여행·로드무비 장르로 분류했다. 프로그램 노트를 통해 이 작품은 지극히 사실적인 다큐멘터리이지만, 처음과 엔딩 장면에는 넌지시 픽션의 흔적을 남겨두었다고 전한다. 이는 차이밍량 감독의 의도일 것이다.

약 66분의 러닝타임 동안 대사는 거의 없다. 롱테이크 촬영 기법과 고정적이면서 정적인 화면 구도가 인상적이다. GV(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감독 특유의 ‘여백의 미’가 담겼음을 알 수 있었다. 일정 시간 동안 정적인 화면이 반복되는데, 그 안에는 집·건축물·구조물, 때로는 일상·집 내부·시장 거리 등이 담긴다. 감독은 GV에서 라이카 카메라로 농촌을 마음껏 촬영하며, 마음이 가는 대로 연출했다고 고백했다. 촬영 당시 빈집, 수리 중인 집, 건축 중인 집, 폐가 등을 접했고, 이를 통해 고향의 느낌을 전하고자 했으며 제약 없는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빈집의 화면을 보며 필자는 ‘비어있음에도 흘러간다’는 인상을 받았다. 정적인 구도 안에서 소리(자연, 바람, 자동차, 오토바이)의 활용이 미묘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점 또한 인상 깊었다. 의도했든 아니든 영화는 그 자체로 강한 힘을 지닌다. 정적인 구조에 대한 질문에 감독은 시간의 흐름을 통해 진실한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으며, 그래서 자신의 영화는 느린 속도를 가진다고 답했다. 이 느림이 오히려 관객에게 안정감을 선사한다.

['집으로' 스틸 컷,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또한, 영화 〈집으로〉는 대사가 거의 없다. 일부 원어 대사가 포함되어 있으나 감독의 요청으로 자막조차 제공되지 않는다. 이에 대한 질문에 차이밍량 감독은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그렇게 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동시에 그는 현재 영화계의 트렌드와는 정반대의 지점을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스토리와 설명을 전하려는 대신, 관객이 직접 체험하는 “느낌”을 담고자 했다는 것이다. 빠른 전개와 자극을 추구하는 영화계의 흐름과 달리, 차이밍량의 영화는 잔잔함 속에서 영화의 본질을 탐구한다. 필자는 〈집으로〉를 보며 영화가 단순히 재미만을 좇지 않아도 된다는 점, 사실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방식 또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영화를 본 후 필자가 느낀 또 하나는 집을 은은하게 비추는 촬영 방식이다. 때로는 평면적으로, 때로는 비교적 입체적으로 보여주었는데 이는 관객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 듯하다. 한 관객은 구분과 분절에 대해 질문했다. 감독은 음향을 통한 자연스러운 연결을 의도했다고 답했다. 필자 또한 영화가 빈집에서 폐가까지 정적인 모습을 비추다가 시간이 흐르며 사람이 등장하고 모이고 활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과정을 통해, 일정 부분 자연스러운 연결이 이루어진다고 느꼈다. 이는 ‘일상은 곧 집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집으로' 스틸 컷,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마지막 장면은 정적인 여백의 극을 보여준다.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이 강하다. 앞선 장면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엔딩을 통해 보여주는데, 이는 영화 〈집으로〉의 ‘깨끗한 결말’처럼 다가온다. 아마 이번 영화에서 유일하게 픽션의 장면일지도 모른다. 앞의 흐름과 반대되는 엔딩으로 감독은 나름의 반전을 주려 했던 듯하다. 어쩌면 자신의 현재 삶을 과거와 대조해 보여주려 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 잔잔함은 개인적으로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 빠른 속도와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이 영화는 의외의 안정감과 평온, 고요함을 전하며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을 일깨운다. 

차이밍량 감독의 〈집으로〉는 보이는 그대로를 카메라에 담는다. 정적인 여백의 미, 그 안에서 피어나는 미세한 떨림, 그리고 집을 통해 전하는 고향과 사람에 대한 사유. 그의 시선은 영화인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귀감이 될 만하다. [객원 에디터 지경환]

씨네필매거진 공식 인스타그램 @cinephile_mag

https://www.instagram.com/cinephile_mag/

씨네필매거진 객원 에디터 모집: https://www.cinephile.kr/news/articleView.html?idxno=474

씨네필매거진 X 서울필름아카데미 <영화이론과정> 안내: https://www.cinephile.kr/news/articleView.html?idxno=454

씨네필매거진 X 서울필름아카데미 <영화비평입문> 안내: https://www.cinephile.kr/news/articleView.html?idxno=499

씨네필매거진 X 서울필름아카데미 수강 신청: https://forms.gle/1ioW2uqfCQGavsZs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