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의 제목에 담긴 의미

2025-09-22     이수석
[얼굴 스틸 컷, 사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실재와 허상의 경계에 대한 집요한 탐문

연상호 감독은 <사이비> 이래로 진실과 믿음, 그리고 집단의 광기가 어떻게 개인을 파멸시키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해왔다. 신작 <얼굴>은 그 연장선에서 가장 서늘하고 잔혹한 질문을 던지며, 그의 세계를 한 단계 더 밀어붙인다. 이번 작품은 40년 전의 죽음을 추적하는 미스터리다. 영화는 ‘얼굴’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기표를 통해 세 가지 층위를 드러낸다. 타인을 규정하는 시선의 폭력성, 상처받은 자아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쌓아 올리는 자기기만의 가면, 그리고 이를 용인하고 재생산하는 공동체의 질서. 연상호 감독은 이를 현미경처럼 정교하게 해부하며, 결국 진실이란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권력과 욕망의 역학 속에서 끊임없이 구성되고 파괴되는 것임을 냉정하게 응시한다.

부재하는 얼굴 : 편견을 투사하는 캔버스, ‘정영희’

영화의 가장 대담한 선택은 주인공 정영희(신현빈)의 얼굴을 스크린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이다. 그녀는 오직 타인들의 파편적이고 악의적인 증언 속에서만 ‘괴물’로 존재할 뿐이다. 친척들은 가문의 수치로, 동료들은 모멸적인 별명으로 그녀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감독은 이 의도된 공백을 통해, 관객마저 편견의 구축 과정에 무의식적으로 동참시키는 현상학적 실험을 감행한다. 반복되는 낙인 속에서 우리 역시 그녀의 흉측한 이미지를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녀의 부재하는 얼굴은 공동체가 자신들의 추함을 투사하는 거대한 캔버스가 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드러난 그녀의 ‘지극히 평범한 얼굴’은, 그녀를 괴물로 만든 것이 외피가 아닌 공동체의 폭력적인 시선이었음을 증명하는 가장 잔인한 물증이 된다. 그녀의 평범함은 역설적으로 가장 급진적인 장치가 되어, 우리가 굳게 믿어온 세계의 근간을 뒤흔든다.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는 이 파열의 순간, 영화는 ‘본다’는 행위의 윤리성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얼굴 스틸 컷, 사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구축된 얼굴 : 가면을 쓴 장인, ‘임영규’

정영희의 얼굴이 ‘지워짐’으로써 존재했다면, 남편 임영규(박정민)의 얼굴은 ‘만들어짐’으로써 존재한다. 시각장애를 극복한 장인이라는 그의 페르소나는, 실상 평생을 짓누른 열등감과 모멸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정교한 방어기제였다. 그가 예술을 통해 시각 너머의 아름다움을 본다는 믿음은, 실은 시각적 세계로부터 받은 상처를 외면하기 위한 자기기만이었음이 드러난다. 아내의 ‘얼굴’에 대한 세상의 평가를 전해 듣는 순간, 그가 구축한 작은 세계는 붕괴하고, 그의 예술은 구원의 증거가 아닌 상처받은 자아를 봉인한 관이었음이 폭로된다. 따라서 그가 아내를 살해한 행위는, 훗날 자신이 완성하고자 하는 ‘극복의 신화’에 치명적인 흠집을 내는 과거의 진실을 선제적으로 제거하는 폭력에 가깝다. 그는 타자를 지우고 자신만의 완결된 서사를 구축함으로써 실존적 불안으로부터 도피하려 한, 가장 정교한 형태의 괴물이다.

폭력의 얼굴 : 공동체의 낙인과 저널리즘

결국 영화는 개인을 넘어, 르네 지라르가 설파한 ‘희생양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공동체의 폭력적인 얼굴을 겨냥한다. 공동체는 내부의 추악함(성폭력, 가정폭력)을 정영희에게 투사하고 그녀를 ‘괴물’로 낙인찍음으로써 스스로를 정화하고 유대감을 확인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진실을 외쳤으나 외면당한 정영희(실패한 저널리스트)와, 자극적인 콘텐츠를 좇다 의도치 않게 진실의 파편을 드러낸 PD(타락한 저널리스트)의 대비는 오늘날 저널리즘의 역할에 대한 냉소적인 통찰을 더한다. 진실을 향한 순수한 의지는 공동체에 의해 좌절되고, 불순한 동기가 역설적으로 진실의 물꼬를 트는 아이러니를 통해 영화는 진실 추구의 지난함을 역설한다. 이 폭력의 질서는 아들 임동환이 진실의 고통 대신 거짓의 안락을 택하며 아버지의 신화를 계승하기로 할 때 다음 세대로의 전이를 암시하며 비극의 원환을 완성한다. 그의 침묵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폭력이 어떻게 대물림되는지에 대한 비극적 증명이 된다.

[얼굴 스틸 컷, 사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감당하고, 마주해야 할 진실

<얼굴>은 철학자 레비나스의 사유처럼, 타인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윤리적 책임인지를 역설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정영희의 얼굴에서 자신들의 욕망과 편견을 읽어낼 뿐이다. 영화의 제목은 외모(face)를 넘어, 우리가 마주해야 할(face) 진실의 다층적인 면모와 그 책임을 동시에 의미한다. 정영희의 평범한 얼굴 사진은 스크린 너머, 우리 내면에 존재할지 모를 또 다른 괴물의 얼굴을 비추는 서늘한 거울이 된다. [객원 에디터 이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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