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던 순간만을 기억해, ‘로봇 드림’
찬란했던 구월의 한복판을 기억하니? 노랫말을 빌려 너에게 묻는 물음.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의 영화 「로봇 드림」(2023)은 뉴욕에 사는 ‘도그’와 그의 단짝, ‘로봇’의 우정에 대한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구월에 로봇을 떠나보냈던 도그와 그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로봇. 서로는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상황은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별을 받아들인 로봇의 용기는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별을 놓아주는 방법
외롭고 따분했던 도그의 일상을 바꾼 것은 우연히 튼 TV 속의 홈쇼핑 광고였다. 전화로 반려 로봇을 주문한 도그는 로봇과 하루하루를 보낸다. 서툰 로봇을 위해 손잡는 법을, 핫도그를 먹는 법을, 롤러 스케이트 타는 법을 알려준다. 주고받는 대사 하나 없지만, 서로 함께하는 행복을 느낀다.
문제는 해변에서 일어난다. 도그와 해변에서 놀던 로봇은 바닷물에 들어갔다 나온 후, 망가져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어떤 조치도 할 수 없던 도그는 다음 날 해변에 남아 있는 로봇을 데리러 갔지만, 문은 닫혀 있었다. 해변의 운영 기간은 어제까지로, 로봇을 만나려면 내년 6월 1일을 기약해야만 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을 보낸 후, 봄을 지나 여름이 찾아왔다. 도그는 로봇을 찾으러 갔지만, 로봇은 이미 고물상에 팔려가 해변에 남아 있지 않았다. 다행히도 너구리 라스칼을 만난 로봇은 새로운 몸통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럼에도 로봇은 여전히 도그를 그리워한다. 도그 또한 마찬가지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로봇을 떠올리던 건 변함없었다.
그러던 중, 도그는 마트에서 반려 로봇을 구매한다. 로봇과 도그는 더 이상 서로의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연히 창밖으로 새로운 로봇과 걸어가는 도그를 발견한 로봇은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붙잡는다.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그를 보며, 로봇은 그렇게 도그를 놓아준다. 지나간 인연을 흘러가는 대로 보내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삶에서 마주할 수많은 이별을 흘려보내는 법을 가르쳐준다.
가끔은 서로의 꿈을 꾸겠지
영화 속, 현실과 이어지는 꿈의 장면들은 생생하다. 제목 그대로, 로봇은 총 네 번의 꿈을 꾼다. 먼저, 바닷가에서 꼼짝 못 할 동안 세 번의 꿈을 꾸게 된다. 작동되지 않음에도, 도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모두 그를 만나러 가는 꿈이다.
토끼들에 의해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어 도그를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한 첫 번째 꿈, 어느 겨울날 눈에 파묻힌 이후 도그를 만났지만 이미 다른 로봇과 함께 있는 장면을 본 두 번째 꿈, 눈 내리는 겨울의 프레임 밖으로 뛰쳐나와 도그와 함께 봤던 「오즈의 마법사」의 배경을 걸어가는 세 번째 꿈. 그러나 이 모든 건 결국 세트의 일부였고, 도그와 함께할 수 없는 불안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로봇이 꾸게 되는 마지막 꿈은 특별하다. 우연히 내다본 창밖의 도그를 만나러 가는 꿈이다.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가지만, 슬퍼하는 새로운 반려 로봇과 자신을 찾으러 온 라스칼의 모습이 겹쳐진다. 꿈과 달리 현실 속 로봇은 도그를 만나러 가지 않는다. 대신 함께 들었던 노래를 크게 틀고, 도그가 들을 수 있도록 볼륨을 높인다. 그들은 떨어져 있지만 같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그렇게 과거의 인연을 보내고, 현재의 인연을 이어간다.
Do You Remember
“Do you remember, the 21st night of September?” 가수 Earth, Wind & Fire의 곡 ‘September’의 첫 가사다. 영화 초반, 도그와 로봇이 센트럴 파크에서 춤을 출 때 삽입된 이 곡은 영화의 주제곡으로 반복된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손을 맞잡고, 공원을 무대 삼아 춤을 추는 두 존재. 이후 화면은 전환되어, 뉴욕 곳곳을 비추고, 쌍안경 너머로 쌍둥이 빌딩이 잠시 스쳐 지나간다.
엔딩에서도 로봇이 몸에 달린 라디오로 ‘September’를 틀고, 노래와 함께 뉴욕 전경이 펼쳐지며 멀리 쌍둥이 빌딩이 보인다. 세계무역센터였던 이 빌딩은 2001년 9월 11일 테러로 무너져 내렸다. ‘September’라는 제목, 영화 속 구월의 이별, 그리고 쌍둥이 빌딩의 상징은 겹쳐지며 잊을 수 없는 상실의 정서를 불러낸다.
「로봇 드림」은 애니메이션의 외피 속에 애도와 위로의 서사를 담아, 우리가 어떻게 이별을 놓아주고 기억을 간직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흐린 날 하나 없던 구월의 밤, 그리움은 잠시 잊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빛나는 순간만을 기억하기를. [객원 에디터 조유정]
씨네필매거진 공식 인스타그램 @cinephile_mag
https://www.instagram.com/cinephile_mag/
씨네필매거진 객원 에디터 모집: https://www.cinephile.kr/news/articleView.html?idxno=474
씨네필매거진 X 서울필름아카데미 <영화이론과정> 안내: https://www.cinephile.kr/news/articleView.html?idxno=454
씨네필매거진 X 서울필름아카데미 <영화비평입문> 안내: https://www.cinephile.kr/news/articleView.html?idxno=499
씨네필매거진 X 서울필름아카데미 수강 신청: https://forms.gle/1ioW2uqfCQGavsZs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