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작은 집, '프란시스 하'

2025-09-15     송용환
[프란시스 하 스틸 컷, 사진 = 그린나래미디어]

인간이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 ‘나’라는 존재가 우주에서 보나 지구에서 보나 작은 점에 불과한 작은 존재라는 사실. 혹자의 삶은 그것들을 받아들이면서부터 더욱 의연해진다. 조금 당당하지 못해도 세상을 마음 편히 유영할 수 있고, 내세울 것 없어도 어깨를 활짝 펴고 걸어갈 수 있다. 물론 이런 세상의 법칙들을 너무 일찍이 깨닫는 것도 재미없을 터. 젊음의 에너지는 그야말로 당당하고 싶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세상에 내세우고 싶은, 서툴지만 그 자체로 뜨거운 마음으로부터 불붙으므로.

프란시스(그레타 거윅)는 무용수를 ‘꿈꾸는’ 27살 청년이다. 그렇다, 아직은 ‘꿈꾸고’ 있다. “무슨 일 하세요(What do you do)?”라는 질문은 늘 어렵다. 그들이 정말 궁금해하는 것은 벌이의 수단일 테니. “나 춤추는 사람이에요(I’m a dancer)!”라고 아직 떵떵거릴 수가 없는 처지다. 그런 무직의 청년에게 도시 월세는 부담이고 압박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그는 베스트 프렌드 소피(믹키 섬너)와의 동거를 시작했고, 둘은 미래에 뉴욕을 접수하고야 말겠다는 계획에 서로를 연루시키며 꿈에 활력을 마구 불어넣는다. 희망에 찬 뒷날을 상상할 때면 설레는 마음으로 온통 부풀어 두둥실 뉴욕 이곳저곳을 마음껏 떠다니는 듯하다.

[프란시스 하 스틸 컷, 사진 = 그린나래미디어]

하지만 두 사람은 꿈과 현실 앞에서 마침내 다른 방향을 바라본다. 소피가 패치(패트릭 휴싱어)와 함께하게 되어 동거를 그만두기로 결정하면서부터다. 하지만 프란시스는 소피가 본인을 속이는 결정을 내리고 있음을 영화 안에서 유일하게 알아차린다. 같이 살기까지 했던, 사랑하는 내 친구를 내가 모르면 누가 알까. 프란시스는 소피의 선택이 밉고, 소피는 자신의 선택을 감싸 안아주지 않는 프란시스의 마음이 밉다. 두 사람이 함께 호흡할 때마다 들숨, 날숨에 서운함과 어색함이 뒤섞여 흐르는 오늘이다.

이후 프란시스는 뉴욕에 좀처럼 정착하지 못한다. 계속해서 집을 옮겨 다녔고, 크리스마스에는 자신의 공연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하필 이럴 때일수록 잘난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은 족족 눈에 든다. 주눅들고 싶지 않은 마음과 외로움을 감추고 싶은 마음에 어울리지도 않는 농담과 허풍을 저도 모르게 떨어보는 이유다. 고향의 부모님 품에서 보내는 안식은 오로지 찰나처럼만 느껴진다. 착륙의 설렘은 온데간데없고 이륙의 쓸쓸함만 남는다.

[프란시스 하 스틸 컷, 사진 = 그린나래미디어]

소피 역시 패치와의 생활이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제는 패치와 약혼도 맺었지만. 소피도 본인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음을 안다. 모처럼 재회한 프란시스와 소피. 오래간만에 두 사람이 한 침대에 누워 있게 된 늦은 밤, 소피는 패치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프란시스에게 다짐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두 사람의 그런 커넥션은 한밤의 짧은 꿈으로만 남는다. 뒤늦게 아침에 눈을 뜬 프란시스는, 소피가 타고 떠난 차의 뒷모습을 맨발로 하염없이 바라만 본다.

이내 프란시스 역시 현실에 타협하게 된다. 내가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내 공연을 꾸릴 수 있음을 이제는 안다. 저만치 떨어져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가도, 불현듯 떠올라 바라보았을 때 우연히 꼭 눈을 마주치는 내 사람. 서로의 미소를 넋 놓고 바라볼 수 있는 내 친구. 그런 존재가 곁에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세상이 알고 있는 그의 이름, 프란시스 핼러데이. 세상이 나를 중요하지 않게 여기면 나도 세상을 중요하지 않게 여기면 된다. 나만의 작은 세계, 사랑하는 사람들의 세계에 집중하기에도 삶은 짧으니. 이제는 세상에 조금 덜 당당해도 좋고, 대단한 무언가를 조금 덜 내세워도 괜찮은 그의 이름, 프란시스 하.

[프란시스 하 스틸 컷, 사진 = 그린나래미디어]

‘프란시스(Frances)’라는 이름, 흑백 연출, 점프 컷, 누벨바그를 연상케 하는 초반부 장면까지. <프란시스 하>는 프랑스 누벨바그 사조로부터 영향을 받은 흔적을 분명히 드러낸다. 하지만 결코 영화사史에 그만한 족적을 남기지는 않을 영화다. 프랑스의 그 새로운 물결을 이어받아 도시를 방황하는 청춘을 그려내고자 한 연출자의 마음은 전해지지만, 특히 청춘의 정체성에 관한 논의를 대사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드러난다.

가령 소피에게 “I love you”라고 연신 고백하는 프란시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이미 사랑스럽다. 하지만 쉼 없이 그것을 거듭하다 보면 영화 자체에 이질감이 든다. 직설적이고 평면적인 대사 하나로 사랑 영화가 되겠다는 뉘앙스가 이내 엿보이는 것이다. 노아 바움백은 한 인터뷰에서 <프란시스 하>를 일종의 러브레터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프란시스 하>는 온전히 러브레터가 되기보다는, 러브레터를 닮고자 하지만 지나친 대사 의존으로 깊이를 잃어버린 영화에 가깝다. 이 점에서 영화는 “러브레터가 되고 싶은 영화”라는 다소 씁쓸한 인상을 남긴다. [객원 에디터 송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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