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이 신지, 세계를 응시하는 카메라

2025-08-25     이수석
[여름정원 스틸 컷, 사진 = 에이유앤씨]

소마이 신지 감독의 카메라는 인물의 감정을 직접 해설하거나 극적인 사건을 좇지 않는다. 그의 렌즈는 그저 묵묵히 바라보고 지켜본다. 편집을 통해 시간을 잘게 나누고 감정을 조작하기보다, 인물이 속한 공간과 흘러가는 시간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아내는 ‘롱테이크’를 통해 자신만의 영화적 세계를 구축했다. 이 연출 방식은 관객에게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스크린 속 세계를 체험하며 스스로 질문하고 사유할 여백을 열어준다.

이러한 소마이 신지의 연출 철학이 가장 완벽하게 주제 의식과 결합한 작품이 바로 <여름정원>(1994)이다. “죽음을 훔쳐보는 아이들”이라는 도발적 설정을 담은 이 영화에서 롱테이크는 단순한 스타일을 넘어, 아이들의 시선으로 죽음을 이해하고 삶과 죽음의 순환을 형식적으로 증명하는 필연적 선택이 된다.

[여름정원 스틸 컷, 사진 = 에이유앤씨]

아이들의 시간, 죽음을 기다리다

영화는 응시의 언어를 통해 관객을 아이들의 주관적 ‘체험의 시간’ 속으로 끌어들인다. 어른에게 죽음은 개념이지만, 아이들에게 죽음은 지루함·호기심·두려움이 뒤섞인 채 흘러가는 시간 그 자체다.

소마이 신지는 아이들이 담벼락 뒤에서 할아버지의 집을 엿보는 장면을 컷 없이 이어간다. 아이들과 함께 숨죽이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료한 시간을 관객도 함께 견뎌내야 한다. 극적인 음악이나 클로즈업 대신 벌레 소리와 소곤거림만이 프레임을 채운다. 관객은 편집된 정보가 아닌, 아이들이 겪는 느리고 막연한 시간을 그대로 전염받는다. 이 체험적 시간을 통해 죽음은 자극적 사건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과정으로 인식되며, 관객은 죽음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시선에 동화된다.

[여름정원 스틸 컷, 사진 = 에이유앤씨]

삶과 죽음의 한 프레임

편집되지 않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소마이 신지의 카메라는 삶과 죽음이라는 이질적인 세계를 하나의 구도 안에 담아낸다. <여름정원>의 롱테이크는 ‘생과 사의 맞닿음’을 포착하는 가장 정교한 그릇이 된다.

아이들과 할아버지가 버려진 정원을 가꾸는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카메라는 특정 인물을 좇지 않고 정원이라는 공간 전체와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넓은 구도로 잡는다. 잡초가 무성했던 죽음의 공간이 아이들의 웃음과 땀으로 생명력을 되찾는 동안,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물장난을 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할아버지가 툇마루에 앉아 조용히 지켜본다. 아이들의 활기와 노인의 쇠락이 분리되지 않고 한 화면에 담기는 순간, 정원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축소판이 된다. 아이들은 정원을 가꾸며 “죽음이 거름이 되어야 새로운 생명이 피어난다”는 자연의 순리를 몸으로 배우게 된다.

[여름정원 스틸 컷, 사진 = 에이유앤씨]

세대를 잇는 고통의 증언

이 공존의 풍경은 마침내 세대를 넘어선 아픔의 공유로 확장된다.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전쟁의 참혹한 경험을 고백하는 장면이 그렇다. 소마이 신지는 이를 플래시백이나 감상적 편집 없이, 오직 노인의 얼굴과 아이들의 반응을 긴 호흡의 롱테이크로 담아낸다.

카메라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더듬는 노인의 침묵과 표정, 그리고 점차 숙연해지는 아이들의 변화를 외면하지 않고 붙든다. 이 편집 없는 시간 속에서 관객은 과거의 참상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트라우마를 다시 꺼내놓는 고통의 무게를 함께 감당한다. 이 장면에서 롱테이크는 아이들이 단순한 청자에서 역사의 아픔을 목격하는 증인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기록하며, 세대 간 단절을 넘어선 진정한 교감을 빚어낸다.

[여름정원 스틸 컷, 사진 = 에이유앤씨]

소마이 신지의 감독론

<여름정원>에서 소마이 신지의 롱테이크는 단순히 시간을 길게 잡는 기술이 아니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죽음을 체험하게 하고, 삶과 죽음이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시간 속에서 흐르는 순환임을 증명하는 영화적 언어다.

편집으로 생과 사를 가르지 않고, 하나의 프레임 안에 아이들의 활기와 노인의 쇠락을 함께 담음으로써 감독은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일부임을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여름정원>은 죽음을 가장 무겁되 가장 담담하게, 그리고 생명력 넘치게 그려낸 소마이 신지 감독론의 정수이자 집약된 걸작이다. [객원 에디터 이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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