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는 대체될 수 있는가... AI 시대의 영화와 예술 노동

영화 산업 내 AI 논의에 대한 예술 노동자들의 목소리

2025-06-30     신건우

AI의 급격한 발전은 노동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창작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영화 산업에서도, AI는 이제 단순 보조를 넘어 인간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2024년 1월, 미국의 컨설팅 기업 CVL 이코노믹스는 영화 산업을 포함한 주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경영진, 고위 임원과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생성형 인공지능(GenAI)이 업무와 고용에 미칠 영향 등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AI 기술 도입은 효율성과 품질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 동시에, 전체 응답자의 75%가 일자리 감소를 체감했다고 답했다.

국내 예측과 조사 결과도 이와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 영화진흥위원회 또한 현안 보고서(’25.1)에서 AI가 영화제작 과정 속 노동집약적인 작업을 대체함으로써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보고서 말미에서는 AI를 활용하지 않는 기존 세대의 창작자들이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창작자들에 밀려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편 고용정보원의 보고서(’24.12)에 따르면, 520개의 직업의 직무 대체율을 추론한 결과, 영화 관련 직업 11개 전부가 직무 대체율 30~70% 사이에 있는 중위험군으로 분류되었다. 이 중 영화 시나리오 작가, 배우, 애니메이터는 3년 뒤에 대체율이 70% 이상인 고위험군으로 분류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무서운 속도로 사람의 창작 능력을 쫓아가는 기술을 가까이서 목격하는 AI 연구자로서 나 역시 해당 전망이 현재 기술 발전 동향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진은 내용과 무관함, 사진 = 픽사베이]

그러나 보고서 속 그럴듯한 문장과 숫자에는 그 이면에 있는 산업 종사자들이 실제로 느끼는 노동 환경의 변화, AI를 활용한 창작 과정 및 결과물에 대한 논의가 부재한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누락되었고, 기업 내 AI 도입의 최종 결정권을 가진 경영진, 정부의 위임을 받아 운영되는 공공기관, 그리고 AI 전문가의 견해만이 기정사실화되어 제시될 뿐이다. 정작 영화 산업의 당사자인 창작자들은, 노동에 대한 담론에서 배제되고 있다. 그들의 의견과 경험은 ‘AI에 의해 대체될 대상’으로만 존재하며, 주체로서의 발언은 쉽게 지워진다. 자료 안에서 예술 노동자로서의 그들의 존재감은 희미해졌고, 그들이 창작해내는 영화의 예술적 본질에 대한 언급은 영화진흥위원회의 보고서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 공백을 의식하는 순간, 직접 각본을 쓰고 영화를 연출하는 사람들, 지금도 촬영장에서 무거운 조명을 들고 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현실과 미래는 어떨지, 그들의 생각이 현장 밖에서 분석하고 전망하기만 하는 자들의 그것과 같을지 혹은 다를지가 궁금해졌다. 영화 산업 내 AI 확산에 대한 업계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직접 인터뷰를 요청하였다. 그 결과 제작사와 일하고 있는 시나리오 작가 1명과 단편 영화 감독 2명과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사진은 내용과 무관함, 사진 = 픽사베이]

“AI는 이미 세상에 나온 작품들을 토대로 학습한 데이터를 창작물로 만들어낼 뿐인데, 사실 예술이란 현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고 공감하는 고통과 정서를 예술인들이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료 조사를 포함한 기획 단계에서 AI를 부분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시나리오 작가 A는 AI에 의한 일자리 대체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 말하며 위와 같은 내용을 언급했다. 그러나 숏폼 컨텐츠를 위한 시나리오 작업 혹은 보조 작가 직무의 일부는 AI가 대체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러한 부분은 신인 작가들의 수입에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사진은 내용과 무관함, 사진 = 픽사베이]

단편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는 감독 B는 영화 제작 과정 전반에서 AI의 활용에 긍정적인 견해를 표했다. 그러나 AI가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일을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과 답하였다.

“그럼에도 아직 틈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택하고 다듬어서 자신만의 색깔을 내는 것은 AI가 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마틴 스콜세지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대중적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AI는 대중의 데이터를 모아서 도출 가능한 가장 그럴듯한 의견을 내지만 이 틀을 벗어날 수는 없으며, 벗어나면 쓸모를 잃고 맙니다. 다시 말해, AI는 가장 대중적인 것을 대중적으로 풀어낼 수 있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풀어낼 수는 없습니다. AI는 개인이 아니니까요. 현시대에서는 궤변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저는 그래서 아직 창작에서 인간의 영역이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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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산업에서 AI가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정책과 예술 노동자를 위한 기술 교육의 필요성에 관한 질문도 해보았다. 작가 A는 “작가가 AI를 도구적으로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임금을 삭감하거나 노동시간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간의 창작 활동을 정책적으로 유효한 노동 활동으로 분명히 규정해 주어야 할 것”이라며 노동 안정성에 대한 정책적 보장을 요구하였다. 

반면 AI 기술 활용 교육 혹은 그에 대한 정책적 지원에 대해서는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AI 기술을 활용하면 분명히 효율적으로 장면을 구현해 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예술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그러한 효율성이 작품을 완성하거나 평가하는 데 필연적인 요소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이 직접 손으로 만들기 때문에 그 가치가 부각되는 경우가 있음을 지적하며, 효율성만으로는 평가될 수 없는 예술로서의 영화의 근본적인 가치에 대해 역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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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사안에 대해 감독 B는 사뭇 다른 의견을 드러냈다.

“촬영 및 조명 등 현장 관련 직종은 AI의 등장에 큰 영향을 받을 것 같습니다. 이미 업계도 많이 술렁이고 있고요. 때문에 관련업계 종사자들에게 AI 교육에 대한 지원이 정책적으로 이뤄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독 B는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를 포함한 영화 제작 전반에서 실제 종사자들의 AI 활용이 활발해지고 있으며, 기술의 발전 속도 또한 매우 빠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각본 작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직무가 근시일 내 AI에 의해 필연적으로 대체될 것이라 우려하며, 본인 역시 틈틈이 GenAI 활용을 위한 프롬프팅 공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AI에 따른 산업 및 노동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개인 차원의 대비뿐 아니라 정책적 지원 역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진은 내용과 무관함, 사진 = 픽사베이]

감독과 스태프를 겸하며 활동 중인 또 다른 감독 C는, 산업 내 AI의 급격한 확산을 인지하고 AI를 활용한 작업 방식 변화를 발 빠르게 따라갈 수 있게끔 꾸준히 AI 툴 사용법을 익히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영화 산업에 미치는 AI의 영향에 대한 방책보다는 영화 산업 자체의 활성화를 위한 작품 제작 지원과 열악한 처우 개선, 불안정한 노동환경 개선 등이 더욱 절실하다고 주장하였다.

교차하는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서 영화 산업 종사자들이 공유하는 것은 AI 시대에 잃어버릴 일자리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본인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 예술의 본질에 대한 고민, 그리고 산업에 대한 진심 어린 걱정이었다. 그들은 기술의 급격한 발전이 초래하는 산업 내 변화에 대해 분명히 인지하고 경계하면서도, 단순히 기술의 결과물이 아닌 예술로서의 영화와 노동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사진은 내용과 무관함, 사진 = 픽사베이]

우리는 기술의 혁신보다 더 절실한 혁신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바로, ‘창작자 자신이 자신의 현실을 말할 수 있는 자리’다. 그것이 마련될 때, 비로소 영화는 인간의 예술로 남을 수 있다. 그리고 현상에 대해 고민하고 발언하는 창작자들의 행위가 창작자들을 배제한 채 진행되어왔던 기존의 논의 구조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첫걸음이라 믿는다. 영화 산업 내 어떠한 직업도 직무도 소외되지 않은 채 진행되는 담론의 장이 형성되어서야 비로소 진정으로 영화와 창작자를 위한 정책 수립과 사회적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독자 투고 신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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