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썸머', 피학자의 쓰디쓴 눈물과 감정 착오

'라스트 썸머'의 감정 착취적 투쟁에 대하여

2025-06-28     김홍일

타인이 개인의 세계로 침범하는 순간, 인간은 갈림길 앞에 선다. 첫 번째는 배척이다. 타인이 세계에 깊숙하게 들어온 순간, 자아는 이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세계 속에서 타인의 영향을 거부하는 자아는 곧 타인에 대한 적대감으로 나타나고, 타인의 존재를 멀리하게 된다. 두 번째는 적응이다. 타인의 영향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한 유연함을 전제한다. 타인이 세계에 자리 잡을수록, 자아는 타인에 대한 감정을 품으려고 한다. 이러한 배척과 적응은 결코 완전히 나눌 수 없다. 오히려 부유하듯, 타인의 사소한 행위 하나만으로도 변하고 만다.

[라스트 썸머 스틸 컷, 사진 = 디스테이션]

<라스트 썸머>의 감정 착취적 투쟁은 이러한 부유와 모호함 속에서 작동한다. 테오에게 세계를 허락한 안느의 사랑은 이미 예고된 파열이기도 하다. 하지만 테오의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테오의 세계에 안느는 어떻게 침범할 수 있었을까? 침입은 다름 아닌, 테오가 갖지 못한 지위에서부터 비롯된다. 아버지의 옆자리에서 평화를 차지하는 안느의 위치. 테오가 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안느의 세계로 진입한다. 하지만 테오의 목적은 안느의 지위를 파괴하고, 자신이 있는 위치로 끌어내리기 위함이 아니다. 테오가 안느와 맺은 감정적 관계를 끝내 아버지에게 폭로하지 않기 때문이다. 

테오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아버지에게 진실을 폭로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무기는 안느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테오가 원하는 것은 어머니의 자리를 되찾는 복수가 아니라, 안느의 세계 안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다. 테오에게 아버지는 늘 부재했던 존재였고, 그 결핍은 감정의 공백으로 남아 있다. 테오는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안느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안느와의 관계를 통해, 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했던 감정을 다시 얻고자 한다. 이때 사랑의 감정은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과거를 다시 쓰려는 무의식적인 시도로 변모한다. 그렇게 <라스트 썸머>의 사랑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은밀한 변주처럼 펼쳐진다.

[라스트 썸머 스틸 컷, 사진 = 디스테이션]

다만 테오의 감정이 안느의 세계에서 독차지되는 순간, 안느와 테오 간의 관계는 산산이 조각난다. 예견된 사랑의 결말 속에서 테오는 안느의 내부에서 저항한다. 테오의 육체적 요구는 안단지 욕망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려는 몸짓이며, 동시에 젊음의 상징이기도 하다. 다만 안느는 결국 테오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를 자신의 세계 밖으로 내몬다. 이때 그녀가 배제한 것은 테오가 아니라, 젊음과 자유에 대한 유연성이다. 그 순간, 안느는 스스로 세계 안에서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지위를 상실한다. 그리하여 둘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감정의 순환에 빠져든다. <라스트 썸머>의 사랑은 결국 사랑받는 이가 사랑하는 이를 착취하면서 완성된다.

테오가 흘리는 눈물은 실연의 슬픔을 담고 있지만, 한 개인에 의하여 착취당한 자의 설움도 포함되어 있다. 안느와의 관계 속에서 테오는 사랑을 느꼈으며, 그것은 가족과 연인이라는 두 영역에서 얻었다. 하지만 안느의 이질적인 거리 두기는 그 자체로 감정의 착취로 느껴진다. 타인을 더욱 사랑할수록, 타인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권력관계 속에서 테오는 공허한 순환을 계속한다. 마침내 테오가 안느를 고소하게 되더라도, 한밤중에 다시 집에 찾아와도, 감정착취의 관계는 계속되고 만다. 물론 안느도 감정착취를 의도하지 않았다. 다만 의도하지 않은 감정착취는 결국 테오를 옭아매는 도구가 되어, 테오가 찾아오게끔 한다. 다르게 말하면 피학자의 쓰디쓴 눈물이야말로, 사랑의 감정착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독자 투고 김홍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