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스턴스', 욕망은 나를 파괴하는가

본질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

2025-06-24     지경환

‘Substance’의 사전적 의미는 ‘물질’, ‘실체’, 혹은 ‘본질’이다. 이 중에서도 ‘본질’이라는 의미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대변하는 데 가장 적절해 보인다. <서브스턴스>는 인간의 본질과 그 균열 속에서 피어나는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이 어떤 방식으로 개인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지를 집요하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데미 무어와 마가렛 퀄리의 대조적인 캐스팅은 영화의 핵심 주제를 시각적으로 구체화하며, 이질적인 두 인물의 갈등과 융합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질문을 확장시킨다.

[서브스턴스 스틸 컷, 사진 = NEW]

‘엘리자베스’ – 데미 무어의 필생의 연기

데미 무어는  <서브스턴스>에서 단순한 주연을 넘어, 자신이 걸어온 배우 인생 전체를 농축한 듯한 연기를 펼친다. 과거의 영광을 간직한 TV 스타 ‘엘리자베스’는 이제 노화와 외모에 대한 사회적 압박 속에서 점차 잊히고 있다. 영화는 그녀가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는 냉소적인 평을 듣는 순간부터, 내면의 욕망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을 따라간다.

그녀의 감정 변화는 절망 → 기회 → 욕망 → 집착 → 파멸이라는 내적 곡선을 따라 진행되며, 데미 무어는 그 미세한 단계를 매 장면마다 탁월하게 설득해낸다. 특히 자신을 지배하는 욕망을 자각한 후 터져 나오는 시기심과 질투는, 과장 없이 광기 어린 연기로 승화된다. 영화는 그녀의 심리를 중심으로 구성되고, 분위기, 음악, 편집의 호흡 또한 ‘엘리자베스’의 시선에 철저히 맞춰진다. 이는 영화가 빠른 템포 속에서도 몰입감을 유지할 수 있는 핵심 이유 중 하나다.

[서브스턴스 스틸 컷, 사진 = NEW]

‘수’ – 젊음이라는 환상을 구현하는 마가렛 퀄리

영화는 엘리자베스라는 한때 인기 있었던 TV 쇼 출연자가 ‘서브스턴스’라는 생물학적 약물을 통해 젊음을 되찾는 실험에 참여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다. 이 약물은 사용자의 본래 신체를 깊은 잠에 빠뜨리고, 젊고 아름다운 새로운 신체를 하루 단위로 대체하게 한다. 마가렛 퀄리가 연기하는 ‘수’는 바로 그 젊은 자아이며, 둘은 점차 한 존재 안에서 충돌하고 융합해가는 과정을 겪는다.

마가렛 퀄리는 ‘젊음’ 그 자체의 상징으로 기능하면서도, 단순한 신체적 아름다움을 넘어선 자의식을 연기로 구현한다. 만족감, 자신감, 흥분, 스타가 되고 싶은 욕망 등을 얼굴과 몸짓에 섬세하게 담아낸다. 그녀는 자신이 ‘젊음의 정점’에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으며, 이를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이는 캐릭터의 본성이라기보다, 감독이 구현하려는 ‘욕망의 생생한 표면성’을 전달하기 위한 매개체로 기능한다.

‘엘리자베스’와 ‘수’는 극단적으로 대조되지만, 영화는 이들을 양립 불가능한 두 존재로 설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라는 슬로건처럼, 두 인물은 점차 한 인격의 양면으로 귀결된다. 본질과 외형, 현실과 환상, 현재와 과거가 충돌하고, 그 충돌은 곧 자기 붕괴로 이어진다.

[서브스턴스 스틸 컷, 사진 = NEW]

본질에서 욕망으로, 욕망에서 파멸로

<서브스턴스>는 인간의 ‘본질’이란 무엇이며, 타인의 시선과 나이듦, 그리고 욕망을 통해 그것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시각적 쾌감이 아닌, 심리적 불편함을 통해 제시한다. 영화는 욕망을 단순한 결핍의 표출로 보지 않는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욕망일수록 더 매혹적이고, 그 욕망을 실현하려는 행위가 인간을 더욱 파괴적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감독 코랄리 파르쟈는 이 불편한 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아름다움과 젊음에 대한 사회적 강박, 여성의 신체가 자산이 되는 구조, 그리고 그 구조 안에서 무너지거나 스스로를 착취하게 되는 인간의 욕망을 그녀는 집요하게 응시한다. 이 때문에 영화는 대중적인 유희보다는 도전적인 메시지로 기억될 것이다.

<서브스턴스>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나의 욕망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라는 새 질문으로 대체한다. 그 과정에서 이 영화는 욕망은 곧 본질의 균열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들춰낸다. 아름다움과 젊음, 과거의 환상에 집착할수록 인간은 더 분열되고 파국에 다가선다. 결국, '욕망'이란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에 대해 영화 <서브스턴스>는 과감하게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가장 원하는 것이 당신을 파괴할 수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원하겠는가?” [객원 에디터 지경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