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파라다이스, 멀티플렉스 바깥의 영화관들

1%의 독립예술영화관들을 찾아서

2025-06-24     강인

바야흐로 멀티플렉스의 시대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CGV가 약 43.8%, 롯데시네마 약 29.8%, 메가박스가 약 24.9%의 스크린 점유율을 차지하며, 이들 세 곳이 전체 극장 스크린의 거의 99%를 점유하고 있다. 영화를 극장에서 본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이 대형 체인들 중 하나를 떠올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시네마 천국 스틸 컷, 사진 = IMDB]

하지만 이 압도적인 수치의 그림자 너머, 여전히 존재하는 나머지 1%의 공간이 있다. 단순한 영화 상영을 넘어서 영화 그 자체를 온전히 경험하고, 그 여운을 오래도록 간직하게 만드는 특별한 장소들이 있다.

이번 글에서는 멀티플렉스 바깥에서 영화를 즐기는 색다른 방법,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날 수 있는 진짜 시네마 파라다이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광화문 씨네큐브 상영관, 사진 = 디트릭스]

광화문 씨네큐브

주소: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 1가 226, 흥국생명 빌딩 지하 2층

광화문에 오면 들리는 곳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늘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교보문고, 그리고 또 하나는 잠시동안 나의 거처가 되어주는 이곳 씨네큐브다.

씨네큐브는 단 두 개의 상영관으로 이뤄져 있어 대형 멀티플렉스에서 느끼기 어려운 아늑하고 사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상영 전 광고 없이 정시 입장을 하고 상영 시작 후에는 입장이 제한되는 관람 매너도 이곳만의 고유한 감성을 더한다.

이 극장이 자리한 흥국생명 빌딩 안에는 세화미술관, 감각적인 카페, 그리고 고요한 레스토랑들이 함께 있어, 영화를 보는 경험을 넘어 하루치 문화 산책이 완성된다. 참고로, 흥국생명 빌딩 안에는 미술관과 카페뿐 아니라 숨겨진 맛집도 많다. 특히 막국수집은 씨네큐브 관람 전후로 들르기에 제격이다.

[필름포럼 상영관, 사진 = 필름포럼 홈페이지]

신촌 필름포럼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성산로 527, 하늬솔빌딩 A동 지하 1층

신촌 한복판, 번화한 거리와 대학가의 소음에서 한 걸음 물러선 지하 공간에 숨어 있는 영화관이 있다. 간판도 크지 않고, 입구도 그리 눈에 띄지 않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조용히 모여드는 곳의 이름은 필름포럼이다.

필름포럼은 단 두 개의 상영관(약 90석, 52석 규모)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예술영화관이다. 대형 멀티플렉스에서는 보기 힘든 국내외 독립영화, 예술영화, 인문학 다큐멘터리 등을 엄선해 상영한다. 상영 후에는 감독이나 전문가와 함께하는 GV(관객과의 대화)나 애프터 필름이라는 후속 강연도 자주 열려, 단지 ‘영화를 본다’는 경험을 넘어서 영화를 둘러싼 대화의 장으로 확장된다.

이곳의 특별함은 공간의 크기보다 관계의 밀도에 있다. 필름포럼은 ‘영화는 함께 나누는 경험’이라는 신념 아래 운영된다. 장애인 고용, 사회적 기업과의 연계, 아티스트 공간 지원 등 영화관 그 이상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다. 영화관 내 작은 카페에서는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고, 티켓을 들고 나서면 머릿속에선 방금 본 영화의 여운이 잔잔히 흘러간다.

혼자 조용히, 그러나 충만하게 영화를 마주하고 싶을 때. 필름포럼은 신촌에서 가장 느긋하고 밀도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더숲 아트시네마 내부, 사진 = 더숲 아트시네마]

더숲 아트시네마

주소: 서울시 노원구 노해로 480, 조광빌딩 지하 1·2층

서울의 북쪽, 노원 한복판에 의외의 장소가 있다. 책과 와인, 커피와 파스타, 그리고 영화가 함께 숨 쉬는 복합 문화공간. 이름처럼 숲처럼 조용하고, 숲처럼 생명력 있는 곳이 바로 더숲 아트시네마다.

더숲 아트시네마는 예술영화와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퀴어 영화제 같은 비주류 장르를 다정하게 품어온 공간이다. 상영관은 지하 두 층에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좌석은 많지 않지만 그만큼 관객과 영화 사이의 거리가 가깝다. 멀티플렉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감독과의 대화(GV), 시네토크, 테마 영화제도 자주 열린다.

이곳이 단순히 영화만 상영하는 곳이 아니라는 점은 상영관 밖을 걸을 때 더 분명해진다. 로비 한편에는 감각적인 북카페가 있고, 책을 읽는 사람들 사이로 커피 향이 스민다. 저녁이 되면 작은 와인 바가 문을 열고, 극장 앞 테이블에는 파스타 접시가 놓인다. 영화와 대화를 나누고, 책과 와인을 곁들이며 하루를 정리하는 일. 이 모든 것이 더숲에서 가능한 일상이다.

멀티플렉스에서 벗어나 영화라는 예술을 천천히, 깊이 음미하고 싶을 때. 더숲 아트시네마는 도심 속 작은 문화 숲으로서, 그 사색의 여백을 선물해 준다.

이들 공간은 모두 대형 체인이 만들어내는 균질한 영화 경험과는 다른, 아주 작고 느린 방식으로 영화와 삶을 이어준다. 대규모 시장의 소음에서 한 발짝 물러나, 영화라는 예술을 곱씹을 수 있는 여백. 어쩌면 그 조용한 여백이야말로, 진정한 시네마 파라다이스일지도 모른다. [객원 에디터 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