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마을에 가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향취를 따라

2025-06-09     강인

어떤 영화는 감정을 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그 흔들림을 꺼내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영화가 나를 흔들어 놓을 때면, 나는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하곤 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스틸 컷, 사진 = 티캐스트]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나를 움직이게 한 영화였다. 인류를 절반으로 줄이려는 계획을 가진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해야 영화가 시작되는 줄 알았던 나에게, 작은 이야기의 울림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 결과 나는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혼자 일본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그곳으로 향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배경인 가마쿠라에 가기 위해 도쿄의 새벽에 맞추어 기지개를 폈다. 신주쿠역에서 열차를 타 와다즈카역까지는 1시간가량 걸렸다. 영화 속 장면을 하나둘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열차는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스틸 컷, 사진 = 티캐스트]

가마쿠라 여행에서는 에노시마 열차를 빼놓을 수 없다. 에노덴이라고도 불리는 이 열차는 후지사와역에서 가마쿠라역을 잇는다. 평균 시속 45km의 느린 속도로 달리는 이 열차에서는 풍경을 보다 천천히 감상할 수 있다.

가마쿠라역에 도착하자마자 푸른 바닷마을이 나를 반겨주었다. 나는 <바닷마을 다이어리> 각본집을 손에 꼭 쥐고, 가장 가고 싶었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스틸 컷, 사진 = 티캐스트]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바다 고양이 식당’. 그곳에서 주인공 스즈는 친구들과 식사를 하기도, 언니들과 비밀을 나누기도 했다. 특히 스즈가 맛있게 먹던 잔멸치 덮밥을 꼭 한번 맛보고 싶었다.

식당의 분위기는 영화 속에서 그려졌던 것보다 한층 더 고요했다. 내부에는 출연진들의 친필 사인이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스즈가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아 잔멸치 덮밥을 한 숟가락 떠보았다. 새삼 멀리도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짭짤한 여운을 입 안에 남긴 채 식당을 나서니, 이 마을이 영화의 무대이자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점처럼 느껴졌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스틸 컷, 사진 = 티캐스트]

<슬램덩크> 오프닝의 명장면으로 유명한 철길도 우연히 마주했다. 마침 나도 를 인상 깊게 본 뒤였기에 이 우연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철길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내가 스즈를 만나러 이곳에 온 것처럼, 누군가는 강백호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멈춰 서 있었던 것이다.

여담이지만, 가마쿠라에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묘도 있다. 이 정도면 가마쿠라는 일본 영화의 도시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바닷마을 다이어리 스틸 컷, 사진 = 티캐스트]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을 등에 지고 나는 또 하나의 영화적 장소를 찾았다. 이름은 몰랐지만, 그 빨간 지붕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스즈가 비를 피해 잠시 앉았던 그 자리에서, 나도 그녀가 바라보았을 풍경을 눈에 담아보았다.

내가 그녀처럼 비를 피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건 아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 바닷마을의 주민이 된 기분이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스틸 컷, 사진 = 티캐스트]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 장면들은 여전히 내 안에서 일시정지되지 않은 채 재생되고 있다. 만약 당신의 마음 속에 멈춰 있는 영화가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직접 재생해보길 권한다. [객원 에디터 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