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로맨스', 사랑의 기억에 대하여
사랑의 기억을 남기거나 지우거나
이송희일 감독의 <굿 로맨스>는 2001년 독립영화로, 당시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이다. 영화는 33살의 미현(박미현)과 18살의 원규(이영훈)가 온라인 채팅을 통해 만나 연인이 되고, 한 달 후 다시 만나기 위해 미현이 원규가 사는 지방으로 내려오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단순한 나이 차 이상의 감정적 거리와 세대 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미현은 역에서 커피를 마시며 원규를 기다리고, 곧 교복을 입은 원규가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다. 둘은 함께 데이트를 하며 서로를 애틋하게 챙긴다. 식물원에서 원규가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일회용 카메라를 사지만, 미현은 자신의 모습을 남기길 거부하고 원규의 독사진만 찍는다. 이는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이 관계가 언젠가 끝날 것을 예감한 미현의 불안함을 암시하는 장치다.
여관에서 밤을 보내는 두 사람의 관계는 다정하고 사랑스럽지만, 다음날 아침 미현이 자신의 목에 남은 흔적을 보고 화를 내면서 갈등이 고조된다. 원규는 관계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지만, 미현은 이를 지우려 한다. 결국, 작은 다툼이 쌓여 둘은 헤어지게 되고, 각자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며 서로의 사랑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이 영화는 2001년 독립단편영화제 대상,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비디오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당대 독립영화계에서 주목받았다. 하지만 오늘날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DVD나 스트리밍이 아닌, 오래된 CD-ROM에서 영화를 찾아보고, USB 컨버터를 이용해야만 감상할 수 있는 불편함은, 마치 첫사랑을 기억 속에서 꺼내는 것처럼 아련하다. 영화는 이처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며, 연애가 점점 더 가벼운 소비의 형태로 변해가는 현대 사회에서 과거의 낭만을 되새기게 만든다.
<굿 로맨스>는 단순한 연애 영화가 아니다. 사랑의 감정이 세대 차이와 사회적 통념 속에서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탐구하며, 특정한 관계를 단정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미현과 원규의 사랑은 유효했을까? 아니면 단순한 착각이었을까? 영화는 그 답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며, 사랑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이들의 사랑이 그저 원조교제나 도덕적인 잣대로만 평가될 수 있는지, 그리고 세대 간 사랑 역시 슬프고 아름다운 '굿 로맨스'이지 않는지 말이다. 짧지만 깊은 울림을 남기는 <굿 로맨스>는, 시간이 흘러도 사랑의 감정을 간직한 이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작품으로 남아 있다. [영화감독 이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