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썬', 부녀 간의 숨겨진 아픔
빛 속에 감춰진 그림자, 한 여름의 기억
처음 <애프터썬>을 보았을 때, 영화의 절반을 건너뛰었다. 대사가 적었고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두 번째 관람에서야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깊은 의미와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샬롯 웰스 감독의 데뷔작인 ‘애프터썬’은 프레임 하나하나가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작품이다.
영화는 1990년대 튀르키예로 여행을 떠난 31세 아버지 캘럼과 그의 11살 딸 소피의 이야기를 다룬다. 겉보기에는 밝고 장난기 많은 아버지 캘럼이지만, 그는 세월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고 있다. 그는 딸에게 자신의 고통을 숨기려 애쓰지만, 사소한 말과 미묘한 표정 속에서 그의 불안감이 드러난다. 한편, 소피 역시 성장 과정에서 소속감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아버지가 수영장에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놀라고 권하지만, 소피는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자신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감정을 마주한다. 이러한 소외감은 캘럼과 소피가 서로 친구처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애프터썬>의 영상미는 마치 따뜻한 가족 영화처럼 보이게 만든다. 눈부신 햇살 아래 쉬는 아버지와 딸, 투명한 바다 속에서 뛰노는 모습 등 밝고 평온한 화면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희망적인 비주얼 속에 숨겨진 감정의 무게는 묵직하다. 캘럼은 영화 내내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며, 이 감정은 여행 전부터 계속 그를 짓누르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캘럼의 내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는 그가 소피와 함께 러그 가게를 방문했을 때다. 그는 850파운드짜리 러그에 관심을 보이며 결국 혼자 다시 찾아가 이를 구매한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상황에서도 사치품을 구매하는 그의 행동은 어쩌면 삶을 포기하는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러그가 내면의 평화를 가져다주길 바랐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더 깊은 우울과 현실의 무게를 깨닫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영화는 캘럼의 직접적인 결말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의 죽음을 암시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영화 속 현재 시점에서 성인이 된 소피는 어린 시절의 캠코더 영상을 돌려보며 아버지의 어둠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녀는 기억 속에서 젊은 아버지가 행복하게 춤추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다가가지도 못하고 말을 걸지도 못한다. 이는 그 여행이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기억임을 암시하며, 소피는 이제 자신의 삶 속에서 그 상처를 받아들이려 한다.
<애프터썬>은 관객에게 직접 설명하기보다 보여주는 방식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영화다. 작은 디테일과 행동 하나하나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영화는 가족, 성찰, 상실,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슬픔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아픔이 얼마나 깊이 남는지를 조용히 이야기한다. [영화감독 송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