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의 영화리뷰] 정동주 감독의 영화리뷰, 헤어질 결심

스토리에 집착하지 않은 깔끔한 연출, 헤어질 결심

2022-11-18     정동주

유능한 형사 ‘해준’, 피해자의 아내이자 유력한 용의자 ‘서래’. 경찰과 용의자라는, 평범하지 않은 만남이 싹틔운 관심은 곧 애정을 피워내고, ‘해준’을 붕괴시킨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의 한장면

 

영화는 처음부터 숨기지 않는다. 영안실에서 처음 만난 '서래'를 '해준'은 넋 놓고 바라본다. 카메라의 중앙에는 '해준'만이 자리한다. 관객에게는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서래'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는 '해준'. '해준'의 표정에서 관객은 이미 짐작할 수 있다. 이 둘은 사랑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랑이 평화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럴듯한 반전이나 특별히 참신한 전개는 없다. 플롯은 예상할 수 있는 수순을 차례로 밟고 흘러간다. 그러나 지루해할 틈이 없다. ‘익히 알고 있을 이야기’라는 예상은 인물의 대사나 영상으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개연성이 되어준다. ‘설득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난 카메라와 편집은 보다 자유롭고, 더 다채롭다.

 

카메라는 '해준'을 중심으로, '해준'의 입장에서 '서래'를 바라본다. '서래'를 보는 '해준'의 눈빛은 사랑스럽기 그지없지만, 그의 등 뒤에서 '서래'를 바라보는 관객의 눈빛에는 의심과 긴장이 가득하다. 잠복하는 '해준'이 그녀와 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묘사된 장면은 '해준'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지만, '서래'가 사랑을 느끼는 과정은 아니다. '해준'은 스마트워치로 사랑을 독백하지만, '서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해준'에 의해 편집된 '서래'의 모습에는 공백이 있다. 그리고 이 공백은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서래'를 의심스럽게 만든다. '서래'가 '해준'을 배신하리라는 것을 관객은 예상할 수 있지만, '해준'은 알지 못한다. '서래'를 알아내는 것은 '해준'의 몫이다. 그가 예정된 붕괴를 향해 어떻게 나아가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이런 궁금증이 전개가 보이는 이야기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장면. 중요한 건 그들의 대화가 아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 서로에 빠져들어 가는 과정. 둘을 함께 찍으면 사람과 카메라의 거리는 멀어지고, 표정은 흐릿해진다. 어깨 너머로 찍으면 다른 한 사람의 일방적인 시선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카메라는 취조실 모니터 속 '서래'의 표정을 담는다. 그 너머에는 해준이 앉아 '서래'를 응시하고, 엇갈린 방향 속에서 '서래' 또한 해준을 바라본다. DNA 검사를 하던 '서래'가 해준에게 고개를 돌리면, 카메라를 등진 해준의 얼굴이 거울에 비친다. 특별히 호기심 담긴 말이 오가지 않아도 서로를 보는 시선과 표정이 그들 사이의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단점은 숨기는 순간 약점이 되지만, 드러내는 순간 강점이 된다. <헤어질 결심>의 담백한 스토리 라인은 오히려 남다른 깊이의 로맨스 영화를 만드는 초석이 되었다. 참신한 스토리에 집착하지 않는 깔끔한 연출. 그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일 것이다.  [ 영화감독 정동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