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끝낼까 해', 해체된 서사성 속 알 수 없는 불안
알 수 없는 불편함에 대한 영화적 표현
찰리 카우프만 감독의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내용을 요약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특별히 중심이 되는 사건이 없을뿐더러 명확한 기승전결도 없다. 관객은 주인공을 스쳐 가는 자잘하고 많은 사건 속에 함께 유기되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끌려다녀야 한다. 통일성과 서사성이 해체되어 있고, 길고 긴 대사에는 의미가 없고, 어느 인물도 납득할 만한 목표를 지니고 있지 않다. 이 영화에는 영화라면 흔히 가지고 있을 법한 뼈대가 거의 없다. 그 대신 뼈대가 없을 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감상을 지닌다.
주인공은 항상 불안에 차 있다. 남자 친구의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차를 타고 시골로 내려가고 있지만, 주인공은 거기에 대한 설렘도, 걱정도 없다. 정확히는 관심이 없고, 더 정확히는 관심 가질 여유가 없다. 자신이 가진 불안을 참기도 벅차다. 남자 친구와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는 대화라기보다 각자의 독백에 가깝다. 주인공은 남자 친구의 말에 꼬박꼬박 대답하지만, 그 내용에 관심 없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때는 남자 친구의 의견도, 반응도 신경 쓰지 않는다. 주인공에게 이 대화는 불편하다. (결별을 생각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랑하는 남자 친구와 단둘이 있는 이 폐쇄적인 공간이 불편하다. 적막한 창밖 풍경을 보며 느끼는 짧은 침묵이 차라리 마음 편히 느껴진다.
둘이 함께 타고 가는 차 안에는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하다. 가까운 관계가 주는 불편함, 그걸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해 느끼는 갈증. 이 모든 감정에는 원인이 없다. 남자 친구는 상냥하고, 배려심 깊다. 두 사람 사이에는 싸울만한 일도 없다. 그렇지만 주인공이 느끼는 불안은 선명하다.
남자 친구의 집은 남자 친구의 자기혐오가 가득하다. 그는 부모님을 대놓고 싫어한다. 농장을 보여준다는 핑계로 주인공이 부모님과 만나지 못하게 빙빙 돌리고, 막상 만나러 가서는 부모님이 내려오지 않자 초조해한다. 2층으로 올라가 모시고 나올 수 있으면서도 절대 올라가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모님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과 초라하고 독선적인 부모님의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충돌한다.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부모님과 긴 세월 속에서 독선적으로 변해버린, 단점 가득한 부모님이 그 자리에 함께 존재한다. 그리고 남자 친구는 그들에 대한 혐오감을, 자신이 그들의 아들이라는 혐오감을 숨기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들을 연민한다. 어릴 적에는 든든하고 멋졌던 부모님의 모습을 기억하면서도 이제는 그 모습을 조금도 찾을 수 없는, 초라한 노인들을 가엽게 여긴다. 그리고 자신도 언젠가 같은 방식으로 세상 속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불안해한다.
영화 전체가 불안과 두려움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를 분명히 불편하게 하고 있지만,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어도 원인을 모르니 고칠 수 없다. 주인공은 불안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지만, 남자 친구는 주인공을 놓아주지 않는다. 남자 친구도 마찬가지다. 부모로부터 내려온 자기혐오와 부모에 대한 연민,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 그것들을 외면하려 한다.
이 영화에서는 이런 감정들을 언어로 표현하지 않는다. 인물 사이 단절된 소통, 인과관계가 맞지 않는 장면의 배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흐름으로 막연하고 거대한 감정들을 가시화하고, 직접 느끼도록 한다.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불안과 불안이 가져오는 답답함만큼은 불안을 표현하는 어떤 말보다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다.
솔직히 말해 이 작품이 이야기로써 재미가 있느냐 하면 아니다. 영화만 보는 것으로는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이야기를 계속 보게 만드는 힘도 없다. 하지만 영화로써 보면, 이 영화는 재밌다.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롭고 독특한 전개 방식이나, 인물의 단점을 하나하나 해체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 감독이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지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무엇’에 대한 깊은 성찰이 보인다. 관객과의 거리가 지나치게 멀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기 어렵지만, 영상 연출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봐야 할 영화이지 않을까 싶다. [영화감독 정동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