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모든 발칙함의 순간들을 한꺼번에
인생에 대한 거시성이 무한한 가능성이 되기까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호불호가 갈리더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전에 듣도 보도 못한 유형의 영화라는 것. 이는 영화를 보고 불호를 표한 사람이라도 인정할 것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온갖 연출로 관객을 몰아치지만, 정작 비슷한 소재인 다중우주를 다룬 <닥터 스트레인지 2>와는 다른 결의 연출을 보인다. <닥터 스트레인지 2>는 말 그대로 할리우드식 CG 자랑질에 불과했다면, 이 영화는 한정된 공간인 국세청 건물에서 모든 사건이 효과적인 연출을 통해 이뤄진다.
영화는 맥시멀리즘이 생각날 정도로 복잡한 면을 보이는 듯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템포를 놓치지 않는다. 잠시 쉴 듯하면 정교한 액션과 긴장감이 수반된 수많은 영화의 정보량이 관객을 몰아친다.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확실히 갈린다. 이 부분을 즐기는 관객이라면 호, 그렇지 않다면 불호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면서도 영화의 내용은 꽉꽉 눌러 담았으니 감독인 대니얼스의 역량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죽하면 나조차도 이 영화의 상영 시간이 3시간인지 착각할 정도였다. 이 영화는 내용이 알차다는 범주를 넘어섰다. 이는 강박적으로 보일 정도다.
중간중간 나타나는 왕가위 감독 오마주 장면도 인상적일 뿐만 아니라 병맛의 수위를 잘 조절해 관객들의 즐거운 헛웃음을 유도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미 내가 보기엔 어떤 사소한 연출상의 결함조차 이 영화에는 없다고 본다.
그렇게 영화가 꾹꾹 담은 내용들도 인상적이다. 다중우주가 발생하는 이유는 우리의 인생의 작고 큰 선택들과 변수들 때문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후회할 때도 있고, 그런 선택을 해서 다행이라고 안심을 할 때도 많다. 우발적인 변수들이 선택들을 통해 촉발되고 주인공 에블린을 완전히 다른 가능성의 세계로 옮겨놓는다. 그것이 또다른 다중우주인 것이다. 그리고 이 세계에 있는 에블린이 최악의 선택들만 해 어떤 특별함도 없는 에블린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오히려 역으로 받아들인다. 에블린은 다중우주의 다른 에블린과 달리 어떠한 능력도 없기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에 들어선다. 그녀는 백지 자체였던 것이다.
조부 투파키의 논리 또한 철학적이면서도 재미있는데, 그녀는 모든 다중우주를 경험하며 모든 인생에 대한 허무감을 가진 인물이다. 여기서는 이민 1세대와 이민 2세대의 갈등이 복합적으로 얽힌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우리의 무한한 가능성과 유한한 인생의 조합은 결코 소중하지 않냐고 관객들에게 되묻는다.
그 모든 지겨운 사소하거나 매우 큰 갈등, 고성, 싸움, 다툼과 슬픔까지 소중하지 않냐고. 우리의 선택은 마치 잘못된 것처럼 보여도 거시적으로 보면 그러한 선택으로 만들어진 게 현재의 우리이자 우리의 현재 관계가 아니냐고 관객에게 되묻는다. 그렇다면 가능성을 제한하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더 나은 내일과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전혀 그런 영화처럼 보이지 않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사랑과 화합을 논하며 끝을 낸다. 영화를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탐나는 감독 대니얼스의 능력이다. 마음만 같아선 그들의 능력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고 싶을 정도다. 정말이지 대니얼스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한 걸까. 병맛 B급 감성과 높은 수위의 더티 개그를 넘나들면서도 따뜻한 엔딩으로 가는 과정이 잘 어울리는 것은 정말이지 좋은 의미로 발칙하다. 그렇다. 대니얼스는 발칙한 능력의 소유자다. 부정할 수 없다.
...혹은 수많은 다중우주의 대니얼스의 수많은 가능성이 이 영화에 집대성된 걸지도 모른다. [영화감독 김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