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우화적인 풍자의 절정
엉성함과 뻔뻔함으로 가득한 한국 사회를 묘사하다
영화 <괴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 중 하나이자, 내가 영화라는 것에 빠지게 만든 첫 영화다.
개인적으로 봉준호 감독을 만난 적은 없지만, 그의 영화를 보며 느낀 바로는 마음속에서는 늘 세상을 향한 비웃음, 냉소가 섞여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나는 그런 냉소가 마음에 든다.
영화의 연출은 흠잡을 만한 것도 없다. 아니, 오히려 매우 훌륭하다. 영화를 대표하는 한강 괴물 등장 장면은 물론이고, 뒤에 언급할 병원 탈출 장면에서의 20초 가량의 원테이크, 그 원테이크 시작점에서 나타나는 달리 인(피사체가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카메라가 물리적으로 가까이 움직이는 기법), 이후 시작되는 가족의 도주와 함께 깔리는 배경음악 '한강찬가'는 내가 이 영화에서 손꼽는 훌륭한 장면이기도 하다.
그래서 굳이 이 영화에서 단점을 꼽으라면 CG를 꼽을 수 있겠다. 하지만 영화 '괴물'에서 괴물 CG 작업 장면이 고작 수백 컷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보통 괴수 영화에 들어가는 괴수 CG 컷은 수천 컷 정도다. 이 영화에서 괴수 CG는 다른 괴수 영화 CG의 10분의 1 정도의 양인 셈이다. 물론 제작비 절감을 위해 괴물의 전체 모습보다는 일부분만 보여주는 식의 연출(대표적으로 초반 한강에서 트럭이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에서 괴물의 발만 보이는 장면. 이때의 괴물은 사람을 잡아먹고 있었는데 카메라는 괴물의 발만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보여주는 연출'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이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괴물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감독이 단순 괴수 영화를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봉준호 감독은 <괴물>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 <괴물>의 엔딩을 보자. 포악해 보이던 괴물. 그 괴물은 정부조차도 어쩌지를 못해 대충 한강 출입 통제만 하는 식이었다. 희생자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주인공 가족은 괴물에게 끌려간 딸을 구하기 위해 무작정 한강에서 괴물과 싸운다.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괴물을 어찌어찌 제거한다. 오락적인 괴수 영화를 기대한 관객들에겐 다소 김 빠지는 결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 제목의 '괴물'은 결코 '괴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영화에 등장한 괴물은 사실 그저 '재난'의 은유일 뿐이다. 이 영화가 진정으로 집중하는 대상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다. 그리고 영화는 당황스럽게도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국민들을 괴롭히고 고통에 빠지게 하는 '괴물'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영화의 처음. 영화는 괴물의 탄생을 보여준다. 미군 기지에서 독극물을 한강으로 방류한다. 한국인 군인은 그런 지시에 반발하지만 곧바로 미국인 상관에게 무시당한다. 영화의 등장한 괴물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렇게 재난이 발생했다.
재난 이후 정부와 국민들의 대응과 반응은 어찌 보면 황당하다. 국민들은 정부의 말을 잘 듣는 듯하다. 정부도 뭔가 있어 보이게 국가적 재난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싶지만, 이후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을 통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의 내용은 엉성하다. (엉성한 부분이 영화가 풍자하고자 하는 지점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영화는 동시에 우화적이면서 뻔뻔하다. 괴물이 한강에 등장한다는 설정도 우화적이면서 뻔뻔하다. 가장 뻔뻔한 장면들 중 하나는 병원 탈출 장면이다.
글의 초반에서 언급한 병원 롱테이크 장면 이후 주인공 가족이 병원에서 나와 주차장의 차를 타고 도망치는 장면은 그야말로 엉성함의 극치다. 경찰은 고작 한 명인데다 주인공 가족의 차를 허우적대며 놓친다. 주인공 가족도 엉성하긴 마찬가지여서 약속된 차를 바로 찾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딸은 가족 무리에서 떨어졌다 천천히 걸어와서 차를 탄다. 이 모든 엉성함에 대해 영화는 뻔뻔하게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이 이런 나라인데 뭐. 난 대한민국을 현실적으로 반영했을 뿐이야."
국민들에게 보여주기식 군인 동원, 경찰력 동원을 하는 정부의 모습은 영화가 나온 수년 뒤의 수많은 실제 사건, 사고, 재난에서도 딱히 달라지지 않았다.
영화 속 괴물을 처치하는 것은 정부가 아닌 소수의 국민(주인공 강두 가족 일행)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며 영화 속 정부 비판에 몰두하기보다는 영화 속의 정부 뒤에 가려진, '무기력하고 영향력이 없으며 정부에 휘둘리는 대다수의 국민들'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너무 이상적인 생각이겠지만) 그들이 정부에 언젠가는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기력과 영향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언제까지나 괴물로 남아있을 수는 없기에. [영화감독 김현승]